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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ul 30. 2024

사주팔자에 남편이 없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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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끄덕이며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 생각해 보면 전국팔도 87년생이면 다 똑같은 운세일 텐데 묘하게 믿게 된다. 과연 내가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카드나 점괘에 의해 알려주는 답이 더 나에게 맞는 선택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정해진 운명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운명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은 커다란 의문으로 남는다.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2달 과정의 사주명리 수업에 신청했다. 사주명리의 지혜를 배우고 활용하여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지혜를 얻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뛰었다.


얼마나 재밌을까.


화요일 아침,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출석부를 보니 15명 모집에 13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아침 시간대라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어르신들이었다. 성함들을 살펴보니, 오랜 경험을 쌓은 사주명리 고수들이 많을 것 같았다. 곧이어 생활한복을 멋들어지게 있게 입은 강사님이 수업 시간에 맞춰 들어오셨다. 그의 인상을 보아하니 사주를 보지 않아도 관심법으로 사람을 꿰뚫고, 구름을 타고 퇴근을 하실 것 같았다.


누구인가.

누가 방구를 뀌었는가.



강사님은 수강생들을 '도반'이라 부르며 앞으로 2달 동안 열심히 공부하자고 의지를 다져주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50-60대 연령층으로, 사주명리를 오랫동안 공부했거나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어느 정도 지식을 쌓으신 분들이셨다. 보아하니 나만 완전 쌩초보에다가 가장 젊었다. 그러한 이유로 반장을 맡았다. 반장이 하는 일은 강사님 잔심부름과 인사, 그리고 출석관리였는데 아무도 카톡에 답을 해주지 않아서 2개월 동안 혼자 카톡방에서 메아리 없는 출석을 외쳤다.


첫 수업에서 오행에 대해 배우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사주명리 내용이 한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갑을병정, 무기경신임계 등등 그 뒤에 대부분의 한자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강사님은 모든 내용을 한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셨는데, 다른 도반 분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치껏 칠판에 적힌 한자 생김새를 교재에 있는 것과 비교하기 바빴다. 한자를 모르면 사주명리 공부가 순탄하게 되지 않는다는 걸 첫날 느꼈지만 게으른 나는 끝끝내 한자공부를 하지 않았다. 호롤롤


.




강사님은 수강생들의 사주를 예시로 들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날은 나의 사주풀이를 하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배경과 성격으로 봤을 때 사주는 은근히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사님이 '좋다, 사주 좋다!'를 연속으로 감탄해 주시기에 그 한마디 만으로도 수업을 잘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알고는 있으라며 장점인 듯 단점인 것 같은 말씀을 하셨다.


"분주씨는, 사주에 재물복은 넘치는데 남편은 안 보여."


무관으로 결혼이 늦어지거나, 결혼이 안될 확률도 있으니 이 부분은 참고해서 다른 기운으로 보충하라고 하셨다. 돈은 넘치는데 남자가 없다니. 결국 나는 내돈내산을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살기는 글렀구나. 나는 내 두다리로 우뚝 서서 보호자 이름에 내 이름을 두번 적을 운명을 타고 났구나 싶다.  지금 이 나이까지 연인 없이 살아온 것도, 금전적으로 풍족했던 이유도, 다 사주팔자대로 살아진 것이었다. 남자복이 없다는 걸 내 진작에 알았지만 직접 도인한테 들으니 조금은 씁쓸했다. 누군가 그랬다. 아무리 날뛰어도 글자는 이길 수가 없다고. 사주에 남자가 없으니 돈이나 펑펑 쓰면서 살아야겠다.


헛헛한 마음을 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계신 83세 강복선 여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인 듯 아닌듯하게 말씀하셨다.




'..... 부럽다'





강복선 여사님은 가장 맏어른으로 사주 수업시간에 항상 일찍 오셔서 예복습을 하시는 분이다. 되게 조용하신 성격이라 평소 수업시간에도 말씀을 거의 안 하시는데 그날따라 나의 사주를 듣고는 방언이 터지신 것이다. 강사님도 복선 여사님의 뜬금없는 혼잣말에 뭐가 부럽냐고, 재물복이 많은 게 부럽냐고 물어보니,




"남편 없는 게 부러워"



 


'겁나 부러워'




반장년아, 나랑 사주 바꾸자.

내 남편 줄게, 니 남편 없는 사주 나를 다오.




마치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수준의 물물교환을 원하는 여사님이 나의 사주를 정말 부러워하시는 게 등뒤로 느껴졌다.

강복선 여사님의 남편분은 어떤 분이시길래 나를 이토록 부러워하는가.



사주명리 수업에 와서 처음으로 남편 없는 게 안심되는 순간이었다.





12 간지의 순서와 한자를 한 번에 알아내지 못해 나는 매 수업시간마다 속으로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드라곤 요롱이 마초 미미 진사오미, 뭉치 키키 강다리 찡찡이 신유술해, 우리끼리 꾸러기 꾸러기, 우리들은 열두 동물, 열두 간지 꾸러기수비대!'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꾸러기수비대 만화영화가 없었다면 내 나이또래의 성인들은 12 간지를 절대로 순서대로 외우지 못했을 것이다.


수업의 대부분은 육십갑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10 간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 계(癸)와, 12 지인 자()·축()·인()·묘()·진()·사()· 오()·미()·신()·유()·술()·해()의 조합하여 순서대로 만든 간지 60개를 말한다. 줄여서 육갑이라고도 한다. 올해 2024는 갑진년으로 '갑'의 색인 청색, '진'을 의미하는 용이 합쳐져서 청룡의 해라고 한다는 걸 이번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날은 60대 박미선 님의 사주를 받아 칠판에 한자로 적으시더니, 다 같이 이 분의 사주를 놓고 풀어보자고 하셨다. 강사님이 박미선 님의 전체 사주를 적어놓고 열정적으로 풀이를 하시더니 갑자기 그분을 향해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병자년이 큰 영향을 끼쳤었네."



응? 병.. ㅈ ㅏ..?

욕 아닌가.

와우. 강사님 화끈하시네.



왜 뜬금없이 저분을 향해 욕을 하시는 걸까. 한자를 모르는 까막눈인 나는, 들리는 대로 해석하는 무식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병자년(丙申年) 1996년* 나 말고 다른 분들은 아무렇지 않은 게 더 의아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욕이라 마음이 초조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그 단어가 아님을 조금 늦게 눈치껏 알아차렸지만 이미 인성에 마귀가 쓰인 인생이라 다른 뜻, 같은 발음이지만 자꾸 내가 더 익숙한 단어로만 들려서 웃음이 나와 입술을 굳게 깨물고 있었다. 배움의 터에게 무슨 이런 불경스러운 생각인가 싶은 죄책감에 다시는 이런 저급한 생각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지 10분 만에 강사님 입술에서 떨어져 나온 한마디에 고개를 그만 떨구고 말았다.




"병신년도 고비셨네"



이건 못참아.






난 아직 멀었나 보다.












                    


 

매번 나눠주시는 간식

어머니들은 언제나 정이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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