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머릿속은 복잡할 때면, 몇 해 전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을 떠올려본다. 서른 살의 나는,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머무르던 그 시절, '지금 아니면 못 할 경험'을 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읽은 스웨덴 친구 M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바로, 8시간짜리 트레킹이었다.'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곳'에 선정된 곳이자 뉴질랜드 최고의 트레킹 코스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1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진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트레킹에 도전하자고 나를 설득시켰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특별한 경험이 아니 나며 나를 유혹했다.
그래.
도가니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산에 올라야지.
예약한 셔틀버스를 타고 트레킹 시작점인 망가테포포로 이동하는 길에 가이드가 말했다. 너무 힘들거나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언제든 중간에 트레킹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도중에 포기를 하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구출해 줄 수밖에 없으니 구출 비용은 400만 원이랬다.
사만 원도 아니고, 사백. 만. 원.
엄청난 금액에 놀란 나는 다리가 부러져도, 무릎이 뒤집혀도, 이를 악물고 완주하겠노라 결심했다. 역시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고산병도, 화산도 아닌, 고액 청구서이다.
출발하자마자 M과 나는 굳은 약속부터 나눴다. 8시간 안에 무사히 완주해서 400만 원 아끼자며 서로의 의지를 불태웠다. 돈 앞에 단결한 한-스웨덴 연합은 기세 좋게 주먹을 맞부딪쳤고, 그렇게 우리의 대장정은 시작됐다. 눈앞에는 끝이 안 보이는 평지와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위엄이 그곳엔 있었다. 정말이지, 눈과 가슴이 동시에 뻥 뚫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우리는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다.
처음에는,
우와, 이것이 뉴질랜드 청정 자연이네.
뷰티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이 러브 뉴질랜드,
감탄했던 마음이
1시간 30분이 지나니,
아직도 그 자연이네?
그 나무가 그 나무잖아.
살짝 감동이 짜게 식어버렸다. 요 놈이 요 놈이고, 저 놈이 저 놈인 자연의 세계
그래도 평지라 힘들지 않게 걸었다. 하지만 되감기를 하듯 비슷한 자연 풍경에 나도 모르게 슬슬 지겨워졌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디스커버리 자연 채널이나 보고 있을걸.
2시간 30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세 바퀴쯤 돌았다. 처음엔 감탄, 그다음엔 의심, 그리고 곧 회의감이 밀려왔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몸은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 덕분에 간신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좀비처럼 질질 끌려 걷다 보니, 어느새 평지는 사라지고 험한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허벅지가 살살 터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 중 유난히 나만 뒤처졌다. 체력 좋은 M이 옆에서 끊임없이 응원하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오르고, 또 오르고, 계속 언덕을 올랐다. 중간에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멈춰버리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계속 올랐다.
곧 '악마의 계단'이라는 악명 높은 코스가 나왔고,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정말 내 하체가 불타는 줄 알았다. 이건 거의 허벅지 바비큐 코스였다. 장시간 계단을 오르니 무릎도가니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서른 살 기념으로 두 다리로 걸어 올랐다가 도가니를 잃고 네 발로 기어 내려올 판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옆에서 '400만 원이 있냐'는 M의 말이 귀싸대기를 때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줬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죽음의 산'이 바로 이곳이라던데— 왜 골룸이 그렇게 삐쩍 마른 건지, 왜 그들이 반지를 던지러 가는 데만 영화 3편, 총 9시간이 걸렸는지, 직접 걸어보니 이해됐다.
굉장히 힘들어.
이 길을 걸어보니, 골룸이 살을 찔래야 찔 수가 없네.
힝.
끝없는 오르막 끝에 드디어, ‘6.4km 지점’이라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엔… 기적처럼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직선으로 걷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또 오르막이 나와 좌절했지만, 이대로 계속 오른다면 곧 하늘에 도달할 것 같은 짜릿함도 들었다. 고통의 한계를 넘어서니 이제는 아픔보다는 이상한 쾌감이 느껴졌다. 감각이 미쳐버린 건지 뇌가 최면을 거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뭐라도 묘한 위안이 되었다.
동공이 반쯤 풀린 나를 보고 M이 식겁하며 뒤에서 힘껏 밀어줬다. 그렇게 스웨덴의 손에 이끌려 30분을 더 오르다 보니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 호수는,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깊은 화산 지형 속에 자리한 그 호수는 빛을 머금은 보석처럼 눈부셨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다만, 유황 증기가 올라와 호수에서 풍겨오는 계란 썩은 듯한 냄새가 콧구멍을 강타하며 감동을 조금은 삭감시키긴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다. 그 아름다움을 마주한 순간, 지금까지의 숨 가빴던 여정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인생도 결국엔 이렇게 빛나는 순간을 만나기 위해 걷는 거겠지.
하산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에 다리가 풀려, 내가 걷는 건지, 중력에 끌려 흘러내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몸은 비틀거리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피니쉬 지점까지 10.4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은 나를 좌절시켰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
오를 때는 얼마나 높은 곳인지 실감할 틈조차 없었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느라 발밑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아래에서 올려다본 그 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험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나 가장 힘들 때는 주변을 볼 여유조차 없다는 걸. 하지만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길 위에서, 바람 소리도, 나무 흔들림도,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주는 평온함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고통스러울 땐 주변이 안 보인다. 오직 발밑만 보고, 당장 넘길 고비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사실 행복은 늘 옆에 있었고 나는 그냥 너무 힘들어서 못 보고 지나쳤던 것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장장 여덟 시간 사십 분의 대장정을 끝으로, 나는 결국 트레킹을 완주했다. 발가락엔 물집이 터져 양말이 축축하게 젖었고, 온몸은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최고였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 앞 낡은 간이 의자에 앉아 M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뭐든 견딜 수 있을 것 같고, 힘든 일이 와도, 나는 버틸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누구든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날의 새벽 공기, 맥주 한 캔의 술기운, 그리고 탈진한 몸에서 피어나는 이상한 용기. 그 모든 게 뒤섞여, 그 밤의 나는 이유 모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그날, 내 삶은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리겠지만, 그날 끝까지 걸어낸 나를 내가 안다. 어떤 길이든, 결국 나는 끝까지 걸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출간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 요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 위해 꺼내본 나의 기록.
흔들릴지언정 나는 멈추지 않을 거니까아아아아아아.
끗
오랜만에 진지해서 놀라셨죠?
확 트인 뉴질랜드 풍경 보시고, 더위는 살짝 잊고 가세요!
오늘도 멋지게, 견디는 하루 되시길
우리 모두 골룸은 되지 말고,
긴 머리 휘날려도 땀 한 방울 안나는 간달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