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빠 생신으로 고향에 다녀왔다.
원래는 외식을 하기로 했으나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집에서 메밀소바를 해 먹기로 했다. 생일날에는 국수처럼 긴 면발을 먹어야 오래 산다는 엄마의 대쪽 철학 때문이다. 어찌 됐든, 엄마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를 위해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어보자며 비록 시판된 소바 소스였지만 나름 대파도 쏭쏭 썰어 넣고 싱싱한 무도 강판에 직접 낑낑대며 갈아 넣으셨다. 아마 엄마는 그날의 한 그릇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갈아 넣은 것 같다.
우리 세 가족이 오랜만에 식탁에 둘러앉았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옛날 얘기, 별 얘기를 다 하며 웃고 떠들었다. 가족이란 게 뭐 별거인가. 평범한 면발 사이사이에도 정이 있었다. 참 행복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소바를 한 70%쯤 먹었을 때였다. 아빠가 유독 너무 맛있게 드시길래 나는 괜히 뿌듯해져서 맛있지 않냐며 고생한 엄마를 칭찬받게 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에게 힐끗 눈치를 줬다. 그러자 아빠, 소바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후루룩 들이킨 후 입을 닦으며 한 말씀하셨다.
"무를 갈아 넣으면 참 좋았을낀데."
… 정적.
안방에 있어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무를 갈아 넣는 걸 보지 못한 아빠는, 센스 없다는 듯 요리 훈수를 두며, “소바에는 원래 생무를 갈아 넣어야 맛이 한층 산다”는 철학을 조곤조곤 피력하셨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엄마의 분노가 식도를 타고 끓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장마보다 더 격렬한 잔소리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아요, 처 맛을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던가, 쎄빠지게 무를 갈아줬는데, 뭐라삿노."
좀 전의 따뜻했던 식탁의 기온은 사라지고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아빠는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무 한 마디에 졸지에 미운 70살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엄마의 분노는 비단 그날의 '무'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평생 가만히 앉아 받아먹으면서 말만 처 많은 사람이고, 아빠 말에 따르면 엄마는 어쩌다 한번 요리한 걸로 팔만대장경을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그 오랜 갈등이 무 위에 살짝 얹혀 터진 셈이다.
그렇게 엄마의 짜증이 천둥처럼 울려 퍼진 순간. 아빠가 젓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더니,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그 뭉툭한 손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본인 입을.
“내, 이 입이 문제다, 입이!!”
… 셀프 처벌 어서오고.
김 씨의 입단속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오른손으로 자기 입을, 그것도 물개 박수처럼 박박 쳤다.
고통보다는 뉘우침이, 멈칫 보다는 리듬감이 느껴지는 퍼포먼스였다. 개콘보다 재밌쪄.
그리고 벌떡 일어나, 말없이 방으로 가서는 문을 닫아버리셨다.
아, 이 광경을 직관하다니.
고향에 내려오길 잘했다.
그렇게, 그날 아빠는 71세가 되셨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