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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Nov 15. 2024

내가 아직까지 노처녀인 이유

요며칠 부모님이 아주 사소한 일로 다투기 시작했다. 콩나물로 시작한 작은 의견 차이였는데 점점 번지더니 아빠의 금식선언으로 싸움이 종료되기도 했다. 두 분다 결혼 갱년기가 왔는지,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아빠가 숨쉬는것조차 꼴뵈기가 싫고, 아빠의 표현에 의하자면 엄마가 걸어다니는 발자국 소리조차 거슬린다고 했다.


얼마전, 아빠와의 '미역국이 짜네마네 사건'으로 엄마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엄마의 기분을 풀어드리려 오랜만에 시장에 나가 함께 맛있는 반찬거리를 장봤다. 따끈한 호떡을 한 손에 꼭 쥐고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걷던 엄마와 나는, 시장 골목길을 지나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발걸음을 멈췄다. 마주 선 사람은 엄마와 예전에 알던 사이로, 몇 년 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다. 뜻밖의 재회에 서로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둘이 손을 맞잡고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옆에 서 있는 나를 뒤늦게야 발견하셨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반갑게 인사하시더니,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보셨다. 그러고는 마침 아는 지인의 아들이 아직 결혼을 못 했다며, 은행에 다니는 착실한 청년이라고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셨다.


은행에 다니는 착실한 청년이라….

왠지 느낌이 좋았다. 내가 저축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운명처럼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됐을까.

내가 너무 대놓고 좋아하면 부끄러우니, 엄마의 입에서 어떤 긍정의 메세지가 나올지 기다렸다.


소개팅때 뭐 입고 가지?

어디서 만나지?

첫 인사로 뭐라고 하지?


짧은 찰나에 머리속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짜고 있는데, 엄마는 이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주 다급한 목소리와 펩시맨같은 손짓으로 손바닥을 방정스럽게 좌우로 흔들어대며,

펩시맨 광고 속 펩시맨

아냐아냐아냐 그런말하지마.

그런애 아냐.


넣어둬넣어둬.

소개팅 당장 넣어둬.



응???

뭘또 저렇게까지 거절하냐.


나는 어떤애길래 엄마는 이리도 사시나무 털듯 손을 떨어대며 거부하는가.

오랜만에 가뭄의 단비같은 소개팅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상황에 나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아주머니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다음에 밥한끼 하자는 대한민국 국민다운 마음에도 없는 흔한 작별인사를 하고는 멀리 시장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호떡을 마저 쩝쩝대며 먹었다.



내가 문제인가.

은행에 다니는 건실한 청년이 문제인가.

그 아줌마가 문제인가.

호떡이 문제인가.



나는 엄마한테 넌지시 아무렇지 않은듯, 별거 아니라는듯, 아주 자연스럽게, 스쳐가는 바람처럼 ".....번 만나볼까?" 말해놓고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씹고있던 호떡을 힘겹게 꿀떡 넘기며 세상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남편이 있어야 할까?"




아……,

엄마가 아직까지 화가 덜 풀렸나보다.

오늘도 혼삿길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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