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요즘 시장 구경에 푹 빠지셨다. 아줌마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오늘은 또 어떤 물건이 나왔는지 꼼꼼히 살펴보시는 게 유일한 낙이 신 듯하다. 문제는 아빠의 '구매 능력'이다. 귀가 얇아 상인의 꾀에 넘어가기 일쑤고, 흥정은커녕 오히려 상인의 '이거 팔아서 남는 게 없다' 수법에 가슴 아파하니 엄마는 늘 혀를 내두른다. 찹쌀떡 장수 아저씨의 눈물겨운 사연에 넘어가 5만 원어치 찹쌀떡을 사 오셨을 때는 온 가족이 찹쌀떡으로 몇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또, 중국산 콩을 국산으로 속여 몇 배나 비싸게 사 오셨을 때는 엄마가 얼마나 화를 내셨는지. 콩을 판 아줌마가 중국사람이면 중국산이 국산이냐며 큰소리치는 엄마가 사실 나도 무섭긴 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민망함에 인중이 길어진 아빠의 모습에 콧등이 시끈 했다. 사실 아빠가 시장에서 뭐든 사 오면 엄마는 그 재료로 식사 준비를 해서 편하긴 하다. 가끔은 그냥 아빠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엄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든 아빠만 봐도 잔소리 공세를 퍼붓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혀를 차며 "사 와도 지랄, 안 사 와도 지랄"이라고 중얼거리곤,
에라잇, 안 해 안 해
다신 안 사와.저 놈의 여편네. 안 해 안 해.
니 잘났다.
그리곤 게눈 감추듯 쏙 방으로 들어간다.
아...
우리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하지만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는 다시 모든 걸 잊고 시장에 다녀왔고 어김없이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시끄러운 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나 주방으로 가니, 엄마가 나를 불러댔다.
"네 아빠가 또 뭘 사 왔는지 좀 봐라."
테이블 위에는 싱싱해 보이는 달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빠는 주인이 직접 키운 닭의 싱싱한 닭알이라며 웃돈을 많이 주긴 했지만 신선도가 최상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달걀을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하필 똥구멍이 작은 닭의 알만 골라왔냐고 투덜댔다.
닭똥칠갑은 덤이요.
작긴 작다.
자꾸 달걀이 작다며 엄마가 계속 트집을 잡자 아빠도 서서히 화가 나는지, 며칠 전처럼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