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구들은 잠버릇이 워낙 심해서 밤에 조용히 잠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족들은 외박보다는 집에서 편히 자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우리 아빠는 평소에는 새색시처럼 조용히 잠드시는데,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주무시는 날에는 밤새 귀신에 시달리는 것처럼 엄청 끙끙 앓는다.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으셨는지, 술기운을 타고 과거의 죄를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아야ㅑㅑㅑ 아아아 이야'
'아요요오오옹오ㅗ야야ㅡ 흐흐흑ㄱㄱ ㅏ'
.... 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곡소리를 낸다. 아빠의 처철한 울음은 나의 정신을 갉아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귀신에 눌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흐느끼는 참회의 소리에 처음엔 아빠를 악몽에서 여러 번 깨워드렸지만, 어느샌가부터 엄마가 그냥 귀신에 시달리게 내버려두라고 해서... (응?) 이제는 나도 그냥 그려려니 내버려 둔다. 미안해요 아빠.
엄마의 잠버릇은 아빠보다 더 나를 괴롭게 한다. 온종일 빡센 일을 한 사람처럼 코를 골아서 정말 시끄럽다. 누가 들으면 오전 내내 100kg 쌀가마니를 옮긴 사람처럼 격정적으로 코를 곤다. 아빠의 가위눌린 앓는 소리는 그에 비하면 조용한 속삭임에 불과한 것 같다. 어찌나 코 고는 소리가 심한지, 엄마와 1박 2일로 여행을 간 착하디 착한 성인군자 같은 금순이모가 밤새 엄마 뺨따귀를 세게 내려치고 싶을 정도니까... 말 다 했다. 나도 가끔 엄마의 고장 난 경운기 같은 코 고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자고 있는 엄마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콧등을 주먹으로 진짜 세게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가 많다. 이런 나의 불효녀 같은 배은망득한 속마음을 엄마한테 말하면, 그 정도 일지 몰랐다며 본인은 괜찮으니 정신 차리게 한대 세게 내려치라고 부탁은 하지만, 엄마코는 800만 원짜리 성형코라 그럴 수 없다. 힝.
엄마와 아빠가 부부동반 모임으로 오전부터 저녁으로 실컷 놀다가 마지막으로 거하게 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의 ‘가위눌림 퍼포먼스’와 엄마의 ‘핵주먹 유발 코골이’가 합세하며 환장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밤새도록 이어진 이들의 분신사바 같은 기괴한 소리는 나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고, 결국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만들다.
'으 어어ㅓㅓㅓ어ㅓ 아아ㅏㅏ 아흐 흐흐흐 이안나ㅏ나ㅏㅏ'
'커ㅓㅓㅓㅓㅓ크크어어어ㅓㅓㅓㅓㅓㅓㅓㅓ억'
눈을 떠도 지옥이요. 감아도 지옥이니라.
나 굉장히 예민해요.
하지만 나도 그들의 창작물이다 보니, 나 역시도 평범하지 않는 잠버릇이 있다. 지금은 고쳐서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노출증 환자 마냥 웃통을 까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더워서 그런지, 옷이 갑갑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항상 자고 일어나면 잠옷이 위로 말려 올려와 있다. 처음에는 배꼽까지 깠다가 점점점 올라가더니 잠옷이 목도리도마뱀처럼 목까지 말려 올라가 다음 날 차가워진 복부 때문에 배탈 나기 일쑤였다. 나의 원시인 같은 벌거숭이 모습을 본 엄마는 정말 숭하다면서 몸매도 좋지 않으니 더 꼴 보기 싫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같이 살았던 친구 H의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부탁으로 임산부들이 착용한다는 보온복대를 차고 잤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티셔츠는 목으로, 복대는 팬티처럼 아래로 내려와 있는 걸 보며 난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복부를 드러내는 습관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예상치 못한 신체 부위를 무의식적으로 노출하는 낯선 행동이 시작되었다. 이 변화는 퇴사 후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오빠와 내가 독립하면서, 우리의 방은 옷과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로 변모했다. 더 이상 내 방이 없어진 나는 거실 바닥에서 잠을 잔다. 바닥 위에서 자는 건 불편하지 않는데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안을 서성이는 부모님의 분주한 발걸음이 더욱 신경 쓰인다.
내가 거실에 누워있으면 꼭 항상 매일같이 내 발을 실수로 밟으셨다. 이불에 꽁꽁 싸여 어디가 다리이고, 어디가 이불인지 몰라 조심스레 발을 내딘다고 내뎠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내 다리가 있다고 한다. 몸무게 63kg의 엄마의 발이 내리 꽂히는 순간, 잠결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 아프다기보다는 놀라움에 더 가깝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갑작스러운 자극에 깨어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정신이 번쩍 든다.
히이이ㅣㄱㄱㄱㄱ
잘 모르겠지만 거세당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지만 몸무게 90kg 이상인 아빠가 실수로 내 발을 밟게 되면 온몸이 뒤틀릴 듯한 고통에 휩싸인다.
그날은, 본의 아니게 두 팔로 기어 다녀야 한다.
아부지, 잔다고 고통을 못 느끼는 건 아닙네다.
이 정도 고통이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기상하것소.
하도 자주 밟히니까 가끔은, 부모님이 일부러 밟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곧 마흔에 늦게까지 거실에서 처 자고 있는 백수 딸년꼴 못 봐 안 봐요. 실수를 가장한 본심. 마치 엄마와 아빠가 둘이서 누가 더 딸년 발을 잘 밟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 씨가 좋아하는 골절게임 ♬ 게임 스타트.
이틀에 한 번꼴로 다리가 밟히는 일이 반복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 본능이 생겨버렸다. 눈이 침침한 부모님을 위해 내 두 다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이게 세상밖으로 노출해 버리는, 나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말이다. 마치 ‘여기 다리가 있으니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빼꼼.
다리가 짓밟히는 것보다 동상 걸리는 걸 선택한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얼어붙는 한이 있더라도, 잠자는 도중 다리가 뭉개지는 끔찍한 경험은 피하고 싶다. 굳이 고르라면 서서히 얼어붙는 고통이 더 참을 만하다. 새벽마다 발만 내놓고 자는 내 모습이 그렇게 웃겼나 보다. 엄마 아빠가 사진까지 찍어가며 즐거워하셨다고 한다. 이걸 보고 웃기보다는 딸이 안타까워서 울어야 하는 게 참된 부모가 아닌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내 엉덩이를 안 밟는 게 어디야. 그렇다면 난 엉덩이를 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