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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Dec 03. 2024

빵은 빵집에서 사 먹을래요

빵은 비싸다. 물론 가격은 상대적인 거라 사람마다 빵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적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현재 백수인 나는 소득이 1원도 없어서 빵 가격이 체감상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비싸도 계속 먹고 싶다는 것이다. 돈이 없을수록 혓바닥은 더 달콤하고 맛있는 것만 찾게 된다. 아마 마음이 허해서 자꾸 뭔가 먹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유튜브를 보고 있던 중, 특별한 재료 없이 시간만 조금 투자하면 보들보들한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영상이 알고리즘에 떠서 깜짝 놀랐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나? 알고리즘이 사람 마음까지 꿰뚫나 보다. 돈은 없지만 빵은 먹고 싶다는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눈앞에 떡하니 쉬운 레시피 영상이 떠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탈리아 전통 빵인 치아바타 레시피 영상을 보고 순간적으로 베이킹 열정이 불타올랐다. 이스트로 부풀려서 쫄깃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인 이 빵은 시간이 꽤 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다행히 집에 강력분, 이스트, 설탕, 소금, 블랙올리브 등 제빵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다 있어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있는 재료 다 때려 넣고 1시간 발효시키고, 몇 번 치대고, 30분 놔두고 또 치대고, 또 30분 기다렸다가 모양 잡고 30분 더 기다리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아바타가 완성된다.


개꿀

너무 쉽잖아?


원래 베이킹을 조금 할 줄 아는 실력자로서, 이렇게 쉬운 베이킹은 누워서 떡먹기라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빵집에서 파는 것보다 더 야들야들하고 촉촉한 빵을 만들어줄 테니 혓바닥으로 이탈리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호언장담 했다. 사실 아빠는 지난번에 있었던 고구마찹쌀빵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날 못 미더워하긴 했다. 힝. <참고하세요. 나에게 상처만 남긴 고구마찹쌀빵>


3인 가족이 먹을 양으로 유튜버가 알려준 레시피의 2배 분량의 재료를 준비해 밀폐용기에 모두 때려 넣고 이리저리 치댄 다음 1시간 발효시켜 두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1시간 뒤, 뚜껑을 열었는데 유튜버가 만든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구멍 송송,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야 하는데 반죽은 찹쌀처럼 퍼져서 밀폐용기 바닥에 진뜩하게 달라붙어있었다. '이게 맞나?' 동서남북으로 치대라고 하던 유튜버의 말을 믿고 반죽을 들어 올리니 쫀득쫀득하게 늘어졌다. 이렇게... 되는 게 맞겠지? 의심은 들었지만, 일단 30분을 더 발효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꺼내서 반죽을 치대 봤다. 그런데 30분 전에 비해 달라진 건 전혀 없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패닉에 빠졌지만 그래도 계속 과정을 따라가며 구워보기로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고롬고롬.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모양이 괴기스러워졌다.


개 불안해.


확실히 영상에서 본 비주얼과는 너무 달랐다. 빵이 봉긋하게 부풀어 올라서 화강암처럼 구멍이 숭숭 나야 하는데, 내 반죽은 2시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게 과연 치아바타가 맞나 싶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때, 지나가던 아빠가 한 마디 했다.


오늘 점심은 이탈리아 빵이 아니라 수제비 하냐?


.... 내 속을 긁는 소리를 해댔다. 무언가 잘못된 걸 나 스스로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오기가 생겨 계속해서 과정을 진행했다. 반죽을 오븐에 구워보면 생각보다 맛있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일단 유튜브가 시킨 대로 200도에 예열된 오븐에서 15분을 구웠다. 

반죽은 이상하지만, 오븐에 넣으면 열에 의해 부풀어 오를 거라 믿으며 기다렸다. 15분이 지나고 오븐에서 반죽을 꺼내보니,


이욜

웬일?

그냥 뜨거운 밀가루 덩어리.


빵을 꺼내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빠는 결국은 밀가루로 화분받침대를 만들었냐고 비아냥댔다.

1차 시도 실패.


레시피에 나온 양대로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도에는 레시피 그대로, 정확하게 재료를 맞춰서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았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실수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 그랬다. "베이킹은 개량의 싸움이다." 1g 차이로도 맛이 달라진다고. 그 말이 맞았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다. 늦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레시대 고-대로 따라 해 보았다.


1시간 발효 후 반죽 치대기, 30분 발효 후 반죽 치대기, 30분 발효 후 모양 잡기, 30분 발효 그리고 굽기.


아까와 비슷하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이번에는 잘되리라.



단단한 밀가루 화석 성공!

이번에는 냄비받침대 대령이요.

엄마가 보더니 참 발전 없는 짓이라며 나무랐다.



이상하다, 이상해.

왜 계속 실패를 하는 걸까?



이번이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며, 심려를 기울여서 마지막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원래 요리는 정성이란 말을 떠올리며, 내가 너무 대충 만들었구나 싶어 이번에는 도를 닦는 마음으로, 손끝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 만들었다. 그동안의 실패를 되돌아보며, 여러 다른 유튜브를 통해 나의 실수 원인을 찾아내려고 했다. 저온 숙성, 너무 많이 젓지 않기, 그동안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번엔 꼭 성공할 거야'라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도전을 시작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1시간 발효 후 꺼내봤더니,

실패가 질질 흘러내리네.

불쾌하고 불길하고 기괴해


오늘 안에 빵은 먹을 순 있겠지?

엄마도 등을 돌려버린 나의 처참한 베이킹 실력.


하지만 굴하지 않고 나는 끝장을 보려 다시 발효시켰다.

슬라임처럼 질질 흘러내렸지만, 계속 발효시키다 보면, 이스트가 점점 부풀어 오르게 해 줄 거야.



그리고 2시간 발효 후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빵을 야무지게 구웠다.



씨이이이이발. 나 안해안해.

그냥 빵은 빵집에서 사먹을라오.


은근 기대했던 엄마는, 밀가루로 메주를 쒔다며 고개를 저었고, 옆에서 깐죽대는 아빠는 오늘 나의 호기심으로 수제비 20인분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며 혀를 찼다. 나는 밀가루 1.6kg과 올리브유 그리고 블랙올리브 한통을 모두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후에야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빵집 빵이 비싸고 맛있는 이유가 있다.



다들 빵집에서 사 드세요.










출처 pixabay

이것이 내가 만들고자 했던 야들야들하고 촉촉한 치아바타입니다.

참 맛있겠쥬?

사 드세요.






* 실패의 원인을 찾아본 결과, 이스트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아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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