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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10. 2025

칭찬이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진 않는다

엄마는 새로 선물 받은 앞치마를 자주 입으셨다. 따뜻하고 포근한 소재가 마음에 드셨지만 끈으로 묶는 스타일의 앞치마가 불편하다며 아빠에게 시장에 있는 수선집에 가서 단추구멍을 뚫어와달라 부탁하셨다. 아빠는 요즘 시장에서 단추구멍 해주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며,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인터넷 검색을 한참을 뒤진 끝에 시장 안, 천 가게에서 단추구멍을 내준다는 정보를 찾아냈다. 한 시간 후, 아빠는 단추구멍을 낸 앞치마를 들고 돌아오셨고, 엄마는 매우 만족해했다. 끈으로 묶을 때보다 훨씬 편하다며, 나머지 하나의 앞치마도 구멍을 만들어오라 부탁했다. 마침 다음날, 시내에 볼일이 있던 나는 엄마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짐을 챙겨 나가려는 나에게 아빠는 묘한 이야기를 했다.


"사장 아줌마가 좀 무뚝뚝할 거야"


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걸 난 잘 안다. 우리 엄마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엄마는 혀로는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지만 뒤에선 다 챙겨주는 정 많은 사람이다. 아빠에게 사장님이 아무리 무뚝뚝해도 나의 사회생활 스킬 혀놀림 하나면 춤을 추게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사람과의 벽을 허물수 있는 건 칭찬밖에 없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 못 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칭찬 한마디면 누구든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난 칭찬이 천직이다.



수선집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오래된 천 가게 수선집이었다. 허름한 간판에 ‘옷 수선’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새겨진 작은 가게였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낡고 오래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져 발걸음을 멈췄다. 낡은 철문을 힘껏 밀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게 안쪽에는 낡은 미싱과 형형색색의 실들이 가득했다. 붉은 뿔테 안경에 연보라색 털모자를 쓴 사장님이 가게 안 평상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는 임영웅 노래영상을 보고 계셨다. 내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임영웅 유튜브에 푹 빠지셔서 나를 쳐다보시지도 않았다. "안녕하세요" 눈치를 보며 겨우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사장님은 핸드폰을 딱 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네까짓 게 감히 우리 영웅님의 목젖을 멈추는가

...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단추구멍을 내러 왔다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앞치마를 꺼냈다. 사장님은 마지못해 억지로 일어나는 것처럼 끙끙 앓으셨고, 괜히 사장님의 음악감상 여가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앞치마를 낚아채듯 들고 가시더니 낡은 재봉틀 앞에 앉으셨다. 가게 안이 얼마나 고요한지 내 콧바람소리가 너무 거칠게 들릴 정도였다. 이럴 때는 칭찬으로 어색한 순간을 깨는 게 가장 좋다. 특히 기술자나 장인들에게 그들의 손기술과 솜씨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머릿속으로 칭찬 내용을 정리하는 순간 단추구멍은 1분도 안돼서 완성이 됐다. 이때다!


"어제 아빠가 여기서 단추구멍을 내셨는데, 사장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저도 꼭 여기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완벽하다.

어제도 왔었다는 걸 은근히 티 내면서, 적절한 솜씨 예찬과 함께 일부러 이까지나 왔다는 생색까지 덧붙였다. 이 정도면 사장님의 흡족한 미소까진 아니라도 앞니정도는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라고



사장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미건조'표현을 인간화한다면 분명 저 사장님일 것이다.

시장 골목에 서 있는 마네킹도 저 사장님보다는 표정이 촉촉 할 것 같다.


단추구멍을 확인시켜 주시고는 지금은 막혀있으니 집에 가서 가운데 부분을 뚫으면 된다고 하고는 마무리를 지으시려 하셨다. 아빠도 여기 왔을 때 사장님이 똑같이 말씀하셨는데, 못하겠다고 하니까 직접 해주셨다는 게 생각이 났다,  하지만 차마 사장님께 직접 해달라는 말은 무서워서 못하겠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어.. 이거 어떻게 뚫으면 되나요?"


그러자 사장님은 내 얼굴을 한번 보시고는, "여기, 이 막힌 실 부분을 따개나 쪽가위로 살짝 실을 따면 돼요"'라고 불친절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아, 안 해주실 건가보다.

그럴 땐 더욱 모르는 척하는 게 답이다.

나는 세상 가장 순수하고 무고한 표정으로 물었다.



"병따개요?"



그러자,

이년 정상 아니네.


사장님은 빨간 안경테 너머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시더니

한숨인 듯 본인 들숨날숨인 듯, 큰 숨을 내쉬더니 실따개로 단추구멍을 따주셨다.


성공!


웃자고 한말인데 사장님 눈빛으로 봤을 때는 내 혀가 박음질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다시 나는 세치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진짜 빠르시네요, 실력이 진짜 좋으세요!"


스타필드 지하주차장보다 더 낮고 깊은 자세로 굽신굽신.

실력 칭찬과 셀프 단골 지정, 이 정도면 내가 안타까워서라도 한 번은 따뜻하게 대답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구멍을 다 뚫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눈 감추듯 다시 평상 위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셨다.


현금을 건네어드리고 가방에 앞치마를 주섬주섬 넣고는 마지막 인사 겸 칭찬 한마디를 쥐어짜 냈다.


"단추구멍 뚫을 일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 자주오..ㄹ.."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사장님은 등을 돌리고 누워계셨다.





가게에서 나온 뒤, 나는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칭찬으로도 춤을 추지 않은 고래가 여기 있었다는 한마디를 하고는 씁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진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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