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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Dec 28. 2022

덕질_내 지갑에 손대는 잘생긴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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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란 나에겐 그저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시간을 때우며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한없이 바라만 보는 슬픈 취미보다는 조금 더 심오한, 배당금 없는 주식에 손해 보는 걸 알면서 계속 투자하는 희망고문 같은 것이다.


나의 덕질 역사는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간다.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활용화 되기 전의 시절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 H.O.T와 젝스키스의 불법 굿즈들이 즐비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인화된 사진부터 시작해 책받침, 열쇠고리, 다이어리 등등 코 묻은 아이들의 용돈을 싹쓸이해갔던 그 시절의 허접한 굿즈들. 그때였을까 나의 덕질의 싹이 세상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이. 25년 뒤 그 아이는 커서 돈을 벌게 되었고, 굽신 거리며 힘들게 번 돈을 고민 한 번 없이 나의 '최애' 덕질에 투자하는 아낌없는 주는 나무가 되었다.


나의 최애가 승승장구하고 인기가 많아져 TV 여기저기에 많이 비치게 되면 괜스레 뿌듯하다. 난 자녀는 없지만 분명 잘 키운 내 자식을 보는 기분이 이런 거라 감히 짐작해 본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싶다. 그가 고급 외제차를 뽑았다는 기사를 보고 분명 저 차에 내 지분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그의 외제차에 대한 나의 지분은 자동차바퀴에 들어간 못 하나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래 그만큼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팬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그 팬들의 ‘우리 오빠 사고 나지 않게 튼튼하고 때깔 좋은 차를 타게 해 주세요’ 염원이 모였고 하늘이 감동하여 우리의 뜻을 받아들이곤 그에게 좋은 차를 주었노라 생각한다.



덕질은 해본 사람만 안다. 얼마나 의미 있고 삶의 큰 활력소인지를. 덕질의 시작은 어렵지 않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딱 맞게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처럼 타이밍과 우연이 만나 시작되는 법이다. 그의 영상이 운명의 알고리즘처럼 화면에 나타났고 우연히 누른 클릭 한 번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에게 무관심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역주행 덕질을 했고 투자했으며 누구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누군가를 이렇게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아할 있다는 걸 덕질을 통해 배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그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나도 열심히 살고자 매 순간 최선을 다 했다. 그는 나의 전부였고 구원자였다. 내 지갑에 여러 차례 손대는 잘생긴 구원자. 


어른이 되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가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허전함이 예고 없이 가슴을 후려칠 때가 있다. 이유도 모르고 예방법도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이 버겁다. 어른이인 나에게 약도 없다는 오춘기가 감기처럼 약해질 때마다 찾아온다. 마음이 허전할수록 나는 덕질에 집착했다. 덕질은 부으면 부울수록 마음 한편은 텅 비어 가고 채우려고 노력해도 손 안 가득 찬 모래알처럼 자꾸 빠져나가는 걸 알지만 멈출 수 없다. 사람에 치여 현생에 치여 동그랗던 나의 마음이 점점 뾰족해졌고 서로를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시절은 이제 없다는 걸 알기에 덕질로나마 위로받는다.

 



덕질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상처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공허함만 있을 뿐. 항상 팬들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그들이기에 나는 그저 좋은 면만 보면 그만이니까. 사실 나의 최애의 열애설 기사를 보고 깡소주를 연거푸 마신적이 있다. 것이 될 수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그런 못되고 못난 심보라고나 할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기며 키보드워리어들의 댓글을 안주삼아 쓴 소주를 삼켜야만 했고 나라 잃은 사람 마냥 허탈하고 슬펐지만 그것마저 추억이 되었다. 어차피 덕질은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니 내가 시간과 돈 그리고 감정을 투자하는 만큼 희로애락의 폭락과 폭등을 받아드려야 한다. 어쩌면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빠져있는 나의 모습을 더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처럼 어느 날 문득 그가 내 앞에 짠 나타나 '당신을 계속 지켜봐 왔어요. 이제 나의 팬이 아니라 사랑이 되어주세요'라는 터무니없는 비현실적 로맨틱 이야기를 우습지만 상상하곤 한다. 그가 나에게 직접적인 뭔가를 해준 적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나를 지탱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팬들은 최애에게 고맙다. 일이 힘들고 사람에 지쳐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 그의 새로 나온 굿즈가 나의 멱살을 잡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만들어 줬으니까. '나 정말 내일 때려치울 거야'하며 씩씩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집 앞에 층층이 쌓인 택배 박스들이 두 팔 벌려 어서 오세요 그대의 돈으로 오늘도 최애의 통장은 두둑해졌소 라며 나를 위로해 주면 '그래 이 맛에 돈 버는 거지 싶어' 사직서를 고이 접어 가슴 깊은 곳에 다시 넣어두게 만들곤 했다.



덕질 이 요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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