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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Dec 29. 2022

미라클모닝의 성공과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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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침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 시간을 갖는 미라클 모닝이 유행했다. 미라클 모닝의 상징은 새벽 4시 30분부터 일과를 시작하는 것인데 난 4시 30분에 알람 5개를 통과한 뒤 눈은 겨우 떴지만 육체가 일어날 준비가 되지 않아 5시가 훌쩍 넘어 기상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4시 30분에 가뿐히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양치를 한 다음 따뜻한 차를 마시는 걸로 시작하는 게 미라클 모닝의 기본 루틴인데, 자꾸만 쏟아지는 잠에 따뜻한 차까지 더해지니 눈을 뜬 게 뜬 게 아니요 깨어 있어도 깬 게 아니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할까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아침공기가 아직까지 차다. 괜히 감기라도 들면 더 고생이지 싶어 시작도 하기 전에 동네 산책을 포기한다. 


그렇다면 새벽 헬스장을 끊어볼까 해서 주변 헬스장을 검색하다가 헬스장에 가려면 적어도 유명 스포츠 브랜드 위아래 한 벌과 실내용 운동화 그리고 멀리서도 간지 나 보인다는 무선 헤드셋 정도 풀창작을 해야 운동할 맛이 날까 해서 홀린 듯이 장바구니에 상품을 마구잡이로 담고서 최종 금액을 보니 잠이 번쩍 깨인다. 역시 피로에는 금융쇼크가 최고다. 


사실 나는 헬스장에 가는 것이 두렵다. 왜냐하면 헬스장에 가기 위한 몸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헬스장에 가면 이미 완성된 몸매를 가진 분들이 본인들의 자랑스러운 육체미를 뽐내고들 계시기에 나의 비루한 몸뚱이를 끌고 그들과 같은 공기를 숨 쉬는 게 부끄러울 것 같아 새벽 운동을 포기했다. 자격지심이겠지만 나의 뚱뚱한 엉덩이를 덜렁덜렁 거리며 그들의 앞을 지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좁디좁은 원룸에서 팔다리를 열심히 휘젓는 것뿐이었다. 


나름 스트레칭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남은 시간에 최애 영상을 몇 편 보다 보니 금방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하루 3시간씩 하던 덕질을 5시간으로 늘려주는, 이름 그대로 기적 같은 아침이다. 미라클 모닝 덕분에 불규칙적이던 덕질을 규칙적이고 더욱더 활기차게 되었다. 사실 덕질뿐 아니라 틈틈이 독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으로 시간을 나노단위로 나눠 취미생활을 하긴 했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수면의 불규칙이었다. 너무 일찍 깨다 보니 오후 3시쯤 잠이 쏟아지고 자꾸만 눈이 감겼다. 잠에서 깨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와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고 오후에 큰 고비를 넘기니 정작 자야 되는 저녁 시간에는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지금 자야 내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고, 이미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쳐 일어나서 뭔가를 할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아 눈뜬 시체와 다름없었다. 밤에는 ‘수면하는 법’을 검색하고 새벽에는 ‘잠에서 깨는 법’을 검색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의 수면 패턴을 고려해 밤에 취미생활을 즐기고 새벽에는 푹 자면 되지 않나 싶었기도 하지만 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고 귀찮다. 그래서 저녁에 푹 자고 새벽에 잘 깨어나는 걸로 다시 방향을 잡은 다음 불면증에 ASMR이 도움이 됐다는 많은 이들의 글을 읽고 온갖 ASMR를 다 검색했다. * ASMR이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과학적 증명은 없습니다.


ASMR이란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것으로 반복되는 소리, 음식을 씹고 마시고 삼키는 소리, 빗소리, 속삭이는 소리 등 일상의 조용한 소음 혹은 백색 소음이 이에 해당한다. ASMR이 나에게 잘 맞았고 매일 습관처럼 듣고 자다 보니 ASMR이 없으면 깊은 수면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중독이 되었고 그 효과를 맹신하게 되었다. 푹 잘 잔 덕에 새벽에도 개운하게 잘 일어나게 되어 한동안은 미라클 모닝도 어려움 없이 잘 실천해 갔다. 하지만 더 큰 부작용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나의 직장 위층인 비어있던 4층 사무실에 새로운 회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대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몇 주 내내 못 박는 소리, 드릴 뚫는 소리,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우리 층까지 고스란히 전해졌고, 이 반복적인 소리에 내 뇌가 즉각 반응하여 수면제를 먹은 힘없는 쥐처럼 나는 미친 듯 쏟아지는 잠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ASMR에 길들여진 나는 공사 소음소리에 입 벌리고 침을 흘릴 정도로 직장에서 앉은 자세로 숙면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마치 종소리가 들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백색소음이 들리는 곳이면 뇌가 수면시간으로 인식하여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길 가다 들리는 '삐 삐 삐' 반복적인 자동차 경고음에도, 아스팔트 도로를 까는 '띠리 띠리 띠리리리리' 큰 트럭의 후진 경고음에도 조건 반사처럼 잠이 쏟아졌다. 비라도 내리면 그날은 그냥 눈이 돌아가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ASMR를 끊었는데 이와 동시에 나의 미라클 모닝도 날아갔다.

그래.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느니 기적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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