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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20. 2023

그러지마요 다음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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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있으면 살고 있는 원룸집에게 영원히 이별을 고해야 한다.

2022년은 나에게 여러 가지 크나큰 변화가 있었고 그 때문에 나도 조금은 달라진 듯싶다. 시간을 되짚어 가장 앞으로 돌아가면 이 집에 (집이라 쓰고 지옥이라 부른다) 입주한 후로 퇴사를 했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어쨌거나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 이 글을 읽기 전 꼭 저의 글 '지옥으로 입주해 버렸다'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얼마 전 집주인이 언제 방을 뺄 계획인지 전화가 왔다. 아직 다음 입주자는 없어 방을 오래 비워두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 하셔서 좋으신 분이 곧 들어오겠죠 하하 영혼 없이 맞장구치고는 나는 계약된 기간까지 깨끗하게 살고 나가겠다 말했고 전화를 끊었다. 막상 나는 내가 집을 이사 나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문득 이 집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된다는 사실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다음에 들어올 입주자가 (미래의 희생양)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할 수 없는 편지를 남기고자 한다.



To. 7**호 새로운 입주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과거의 희생양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계시는 거 보니 당신도 속으셨나 봅니다. 저의 퇴실 후 방을 보러 와 방 상태만 보고 덜컥 계약을 하신 거라면 방을 너무 깨끗이 청소하고 간 저의 잘못도 0.95452832% 있다고 생각이 들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달드립니다. 분명 방을 보러 왔을 때 냉장고가 꺼져있었기 때문에 냉장고 소음을 듣지 못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냉장고를 가동하는 순간 지옥 입성의 빵빠레가 울릴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아요. 경고컨대 정말 시끄럽습니다. 집안에 연식이 오오오오래된 고기잡이 배가 하루종일 떠있다고 생각하시면 되여. 계약된 1년 동안은 두 귀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예요.


그렇다고 주인아주머니께 여러 번 전화하고 동영상 찍어보내도 소용없어요 오히려 본인집 냉장고 소음이 더 크니 한번 보라고 여러 각도로 찍힌 주인집 아줌마 냉장고 동영상 폭탄을 맞으실 거예요. 귀를 포기하든 냉장고를 아예 꺼버리고 땅을 파 음식을 보관하든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암막커튼은 꼭 달길 바라요. 건물 맞은편에 큰운동장이 있는데 아침 6시부터 (어떨때는 5시 40분부터) 밤 10시까지는 운동장 대형 헤드라이트가 풀가동돼서 커튼 없이는 눈부셔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될꺼예요. 그래도 좋은 점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거나 알람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어요 왜냐하면 새벽 댓바람부터 조명이 당신의 안구테러하듯 환하게 비춰 눈을 감아도 감은게 아닌 게 된답니다. 마치 쌍안경처럼 손전등이 양쪽 안구를 강하게 비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참 우렁찬 축구인들의 고함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는 덤이랍니다. 헤헷.


창문에 태양 있는 거 아님 하느님이 구원하러 온 거 아님.

처음 입주 이사를 하고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너어어어무 눈이 부셔서 나는 내가 죽어서 어디 천국이나 저세상에서 눈을 뜬 줄 알았어요. 이 세상에 살고 싶다면 꼭 암막커튼 두껍고 어두운 색으로 선택하시길 바라요.


이왕 창문 이야기 하는 김에 하나 더 미리 귀띔해주자면, 창문 열 때 바깥에서 하루종일 치킨기름냄새가 솔솔 올라올 거예요. 이 건물 왼쪽 편에 치킨가게가 줄줄이 5개 있는 거 보셨죠? 네 맞습니다. 그 가게들의 환풍구가 이쪽으로 나있어서 창문 열어두면 집안이 온통 치킨냄새로 가득 찰 거예요. 치킨 좋아하시면 이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여기 산 뒤로 전 치킨 트라우마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여름 되면 가게 앞에서 치맥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 새벽까지 고성방가 즐기시는데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 기분이 들지 않아 외롭진 않을 거예요! 아참 이번에 보니까 치킨가게 옆에 편의점이 하나 들어오던데 예상컨대 매일 밤마다 시끌벅적한 월드컵 정도의 흥겨운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를 것 같아요! 그냥 잠은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오피스텔은 방음이 안되는 거 아시죠? 옆집에 남자분이 사시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느낌상 좋으신 분인 것 같아요 앙칼진 강아지를 키우시거든요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요. 강아지가 아직 애기인지 자주 귀엽게 신경 쓰이게 아무 때나 왕왕 짖을 거예요! 그래도 주인이 짖지 말라고 호되게 혼내는 소리까지 들리는 거 보니까 그분도 나름 소음에 신경 쓰고 계신 게 분명해요! 좋은 이웃이에요.


이 집의 단점을 굳이 뽑자면, 바닥이 조금 예민해요. 웃풍 때문에 집이 굉장히 추워서 양말을 2-3개 신는데, 걸어 다니기만 해도 바닥에 찍힘 자국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전에 살던 분도 바닥에 자국을 엄청 내고 가셨어요 아마 독수리 발톱처럼 그 분 발톱이 밑으로 뾰족하게 자랐나 봐요. 이 부분이 신경 쓰여서 저는 사는 동안 집에서 거의 걷지 않고 스케이트 타듯 바닥을 밀면서 다녔어요 그래서 양말이 닳아 버린 게 몇 십 개가 된답니닷. 제 생각에는 내성발톱인 사람만 이 집에서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내성발톱이 아니시면 기어 다니셔도 돼요!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제가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으니까 사시는 동안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저처럼 즐거우시길 바라요. 저는 여기 사는 동안 주변사람들이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해요 원래 되게 성격이 무딘 집순이 었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작은 소리에도 짜증을 잘내는 예민한 송곳녀 되었답니다. 이 집은 내향적인 사람을 밖으로 싸돌아다니게 만드는 고마운 곳임은 틀림없어요. 사시는 동안 내 집 마련의 간절함이 생겨 개같이 돈 만 벌게 될 거예요. 행복하시길 바래요!


참고로 귀마개는 다이소에서, 수면유도제는 약국에서, 수면제는 신경외과에서 처방받으면 됩니다. 파이팅.



From. 601호 전 희생양






나 너무 친절한 것 같아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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