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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r 13. 2023

꿈이 나에게 로또를 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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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꿈을 꾼다. 단 하루도 꿈 없이 잠을 자본 적이 없다. 하도 희한한 꿈을 많이 꿔서 난 모든 사람들이 다 꿈을 꾸면서 자는 줄 알았는데 꿈을 안 꾸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은 적도 있다. 꿈이란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이나 정보가 이것저것 짬뽕이 되어 무작위로 재현되는 영화 같은 거라는데 나의 무의식에는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초예민한 성격이라 대부분의 꿈이 나를 짜증 나고 화나게 해 열받아서 홧김에 강제 기상하는 날들이 많다.


예전에 일주일 중 5일은 악몽으로 눈을 감아도 감은게 아닌, 잠을 자도 잔 게 아닌 괴로운 나날들이 많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알몸으로 자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꿈을 꾸지 않을 정도로 램수면에 빠져 푹 잔다는 꿀팁을 얻고선 그날 태아시절로 돌아가 호오오올딱 벗고 맨몸으로 설레는 맘으로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인이 됨을 온몸으로 깨닫고 가벼운 마음으로 꿈속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꿈속에서 나의 나체에 향한 사람들의 멸시괄시 어린 눈총과 손가락질을 받았다. 몸을 가릴 옷을 찾아 산을 오르고 태평양을 수영으로 가로질러 용암을 건너고 불구덩이를 지나는 험란한 모험을 떠나는 평소보다 더한 악몽을 꾸었다. 자고 일어난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간혹 이것은 조상님의 계시다 싶은 대박 조짐을 나타내는 꿈도 몇 차례 꾸었다.

하루는 꿈에서 나는 오피스텔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갑자기 쓰나미가 저 멀리서 오더니 순식간에 물바다가 불바다로 변했고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면 큰일 날 것 같아 열려있는 창문을 닫으려고 기를 썼지만 이내 불이 집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혼비백산하며 집을 뛰쳐나와 활활 타오르는 집을 보고선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불이 나는 꿈은 좋은 징조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집이 불타면 돈복이 들어온다 하여 재물운이 상승한다는 좋은 글들이 가득했다. 옳다구나 이거로다. 이제껏 개고생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이 로또 한방으로 보상받는구나 싶어 로또가게가 오픈하자마자 얼른 5천 원 치 샀다.


로또 발표날까지 즐거운 기다림. 1등 되면 뭘 하지.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즐거운 상상을 했다. 이건 분명 계시다. 집이 불에 활활 타올라 로또 한방으로 헌 집대신 새 집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겠구나. 그리곤 로또를 향해 크게 절 한 번을 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했다. 아 진짜 1등 되면 어떡하지.

응. 난 아니야.

숫자 개열받네.


그렇게 로또 개꽝친걸 보고 역시 나는 안될 놈이구나 싶어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며칠뒤, 나는 또 이상한 꿈을 꿨다. 꿈에서 고인이 되신 두 분, 할머니와 큰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계셨고 두 분이 나를 향해 웃으셨다. 이상하게 기분이 편안했다. 참 이상한 꿈이네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그다음 날에도 두 분이 나오셨고, 이번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나와서 잔칫날에 다 같이 즐거워하는 꿈을 꿨다. 뭔가 두 분이 나에게 암시를 해주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 엄마에게 꿈 내용을 전달하니 당장 로또를 사라고 했다.


이번은 느낌이 좋다. 앞서 꾼 불이 난 꿈과는 다르다. 왔다 왔어. 촉이 왔다. 돈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여 로또대박점인 곳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로또 한 장을 사 왔다. 그리고 또 시작된 설렘. 1등 되면 집사고 차사고 옷사고 다 사야지. 유기견 보호센터에 기부하고 여행 가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싶어 로또 발표날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조상님 꿈은 무조건 좋다고 했다. 드디어 이제껏 개고생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이 로또 한방으로 보상받는구나. 또다시 로또 용지를 향해 큰 절 한번 한 뒤 번호를 확인했다. 느낌이 좋아. 이건 못돼도 최소 2등이다. 감사합니다. 소중히 쓰겠습니다.

응 이것도 아니야.

적힌 글이 더 빡치게 한다. 전혀 아쉽지도 않은 번호 한 개 주제에.

이제 로또 안 해야지 다짐했다.


그렇게 로또 한방 희망의 불씨가 꺼져갈 때쯤, 굉장히 이상한 꿈을 꿨다.

최애 배우 변요한과 꿈에서는 연인관계였고 그의 집에서 꽁냥꽁냥 데이트를 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물이 넘쳐흐르더니 굵은 응가가 두둥실 떠다니는 지경이 되었다. 급한 마음에 나는 냅다 맨손으로 응가를 주섬주섬 호주머니에 (.... 응?) 집어넣었지만 변기 안에서 응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화장실을 가득 채워버렸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똥물에서 에라 모르겠다 수영을 해버렸다.. 그리고 잠에서 깼는데 뭔 이런 병신 같은 꿈을 꿨나 싶어 굉장히 찝찝했지만 번쩍 든 생각. 이거다. 똥꿈 미쳤네.


좋아하는 연예인과 응가가 동시에 나오다니. 그냥 똥꿈도 아니고 내가 손으로 주무르고 온몸에 칠갑하고 심지어 수영까지 했으니 이건 검색할 것도 없고 그냥 대박꿈이로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날 바로 로또를 사서 1등 기원 통장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기대하지 말고 최대한 긴장 풀고 좋은 기운으로 건강한 생각만 하자 싶어 그 며칠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했다. 이제껏 개고생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이 로또 한방으로 보상받는구나. 2023년은 나의 해라는 운세를 봤는데 이렇게 운이 트이는구나 싶어 얼른 확인해 봤다. 봉사하면서 좋은 곳에 나눠쓰겠습니다.

응 이번에도 아니야.

잘 가 내 오천 원. 이렇게 안되기도 싶지 않을 텐데.

이제 진짜 안 해야겠다 다짐했다.


역시 나는 내 힘으로 돈 벌어서 근근이 먹고살 팔자인가 싶어 다시는 로또 따위에 돈낭비를 하지 않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그 후에도 계속 꿈은 이어졌다. 항상 그랬듯이 대부분의 꿈은 말도 안 되는 희한한 내용이었고 자고 일어나서 곱씹어보면 도대체 왜 나는 이런 이상하고 피곤한 꿈만 꿀까 싶은 생각을 자주 했다.


하지만

드디어 행운을 뜻한다는 럭키 세븐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불면증의 증상 없이 눕자마자 쉽게 잠에 들었다. 꿈에서 우리 가족과 옆집에 살고 있다는 아저씨와 같이 레몬농사를 짓고 있었다. 우리 가족과 그 아저씨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고 같이 밭을 일구고 레몬도 따고 밥도 먹고 고됐지만 농사가 잘돼서 즐거워했다. 나는 레몬 사업으로 성공해 유명인사가 되어 부자가 되어 돈을 쓸어 모으고 어쩌고 저쩌고... 잠에서 깼다. 그리고 뭔 이런 꿈을 꿨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옆집 아저씨는 현직 대통령이었다. 대박. 로또 1등 된 사람들 인터뷰에 대통령 꿈을 꿨다는 사람을 몇 봤는데 이건 틀림없는 대박꿈이다.


이젠 내 차례구나.

그 인터뷰에 이제 내가 제0000회 차 1등 김 00 씨가 되겠구나. 목욕재계를 싹 하고는 당첨된 적 없다는 동네 허름한 로또방으로 갔다. 될 놈은 넘어져도 돈을 줍는다는 말처럼 내가 왕이 될 운명이라면 어디서 뭘 사든 되겠지 싶었다. 로또방 아저씨 나한테 절할 준비 하세요.


토요일 밤 10시, 때가 됐다.

누가 내 생일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로또 1등 당첨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답해야지 껄껄. 이제껏 개고생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이 로또 한방으로 보상받는구나. 이때까지와는 다른 의식을 하자 싶어 더 이상 큰절은 하지 않는 대신 로또용지에 간절한 염원을 담은 찐한 뽀뽀를 했다. 나라님아 나라님아 나에게 복을 주세요. 대한민국 경제를 내가 살리겠소.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결과.

대애애애애애애애박. 진짜 럭키세븐이 터졌다.

응 그냥 숫자 칠.








이번생은

부자 되기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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