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날씨 때문인지 왼쪽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면 눈곱이 가득 차 눈뜨기가 어려울 정도로 눈 상태가 나빠졌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안과에 갔다. 선생님이 기계에 턱과 이마를 붙이고 화면에 보이는 작은집에 시선을 고정시키라 했다. 짧은 바람이 순간 나올 테니 절대 눈을 깜박거리지 마라 당부했다.
오호라. 시작되었군.혼자만 시작된 의사 선생님과의 밀당.
감히 나에게 눈을 깜박이지 말라 하였는가. 그렇다면 눈을 1초에 10번을 깜박이고 말겠어. 하지 말라는 건 꼭 해야 되는 청개구리 기질이 봄과 함께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바람이 나오는 동시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선생님이 다시 여러 번 바람을 쏘았는데 그때마다 눈꺼풀은 나의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눈을 깜빡였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분 이러시면 진찰이 안되요라 하셨지만 제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기엔 눈감는 타이밍이 기막히게 정확했다. 선생님은 갸우뚱하시면서 다시 바람을 쏘셨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의 인내심을 실험하듯 나는 바람이 나오는 찰나에 맞게 눈을 감아버렸다. 아.. 환자분. 다시요. 아. 아. 그러시면 안 돼요. 선생님이 거의 애원하셨지만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흙흙. 저도 제어가 안 된단 말이에요. 죄.. 죄송해요 라 말했다.
아 물론 속으로.
여차저차해서 눈검사를 했고 결론은 다래끼인지 염증인지 3일 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과 약사선생님도 감염성이 있으니 절대 당분간은 손으로 눈을 만지거나 비비지 말라고 했다.
집에 와서 약 먹고 앉아있으니 눈이 너무 가려웠다. 귓가에는 의사 선생님의 절대 눈 만지지 마세요 비비지 마세요 요 요 요 음성이 맴도는데 나도 모르게 한번 만져볼까 싶은 마음에 한 손가락으로 눈밑꺼풀을 살짝 눌렀다. 그리고 느껴지는
극 to the 락
살짝 눌렀을 뿐인데 안구가 폭포수에 등목을 한 것처럼 무척 시원했다. 한 손가락으로만 잠시 눌렀을 뿐인데 이렇게 짜릿한데 만약 다섯 손가락으로 팍팍 긁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순간 정신줄을 놓을 찰나에 엄마가 저녁을 먹자하여 위험한 순간을 피했다.
밥을 한참 잘 먹고 있는데 눈이 빨개진 나를 아빠가 발견하고는눈이 왜 그러느냐 절대 함부로 손으로 긁거나 만지지 마라고 하는 순간 이것은 곧 도전이요 신의 음성이니라. 식욕에 의해 잠시 잊고 있었던 눈의 가려움이 다시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식사 내내 눈을 긁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너무 가려워. 긁고 싶다.
미친 듯 긁고 싶다. 반찬으로 나온 저 생선의 몸통뼈로 눈을 긁으면 무지 시원하겠지 껄껄.
순간 이성을 잃을뻔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가 생선뼈를 통째로 들고 하모니카처럼 날름 발라먹는 바람에 실패.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시원한 오이냉국에 실수 인척 잠시 눈을 담그면 눈이 파스 바른 것처럼 시원하겠지. 실행을 하기 전 엄마가 냉국을 원샷하는 바람에 그것마저 실패해 버렸다.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고 그럴수록 눈은 더 가려웠다.
어머니 어머니 그 밥주걱으로 내 눈 좀 내려쳐주시오. 아버지 아버지 그 빗자루로 내 눈 좀 쓸어주시오.
가렵다고 생각하니 눈이 더 가려워졌고 아침보다 눈이 더 심각해진 걸 느꼈다. 차라리 빨리 잠들어야겠다 싶어서 얼른 누웠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에서도 눈이 가렵길래 꿈에서는 뭐 어때하며 나는 신나게 눈을 긁고 비비고 눈꺼풀을 돌리고 치고 찍고 꼬집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아 너무 시원해.
그리고 다음날 아침
으어어ㅓㅓㆍ엉마이 아이즈.
내 눈.
눈이 안 떠진다.
꿈이 아니었구나.
안과로 급히 갔다. 하루 사이에 눈이 심각해진 걸 본 의사 선생님은 혹시 손댔냐고 나를 추긍하셨고 잠결에 긁은 것 같다고 이실직고했다. 더 심각해질 수 있으니 절대 절대 절대 손대지 말고 신신당부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