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나보고 진작에 개그우먼이 되었어야 했는데 남을 웃기는 재능을 묵혀두기엔 너무 아깝다고 하지만 난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재밌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내가 엄마보다 재밌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행동이 과장되거나 우스운 게 아니라 그녀가 하는 모든 말들이 그저 재밌다. 결코 남을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닌 평소 본인의 말투며 그런 본인의 말에 웃으면 굉장히 기분 나빠한다. 엄마는 밖에 나가서는 과묵한 편이라 사람들은 엄마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인지 모른다. 안타깝다. 우리 엄마가 제2의 이봉원이 될 수 있었는데.
엄마가 재밌는 가장 큰 이유는 엄마는 남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어쩌다 보니 엄마 디스)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기억해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서타일이기 때문이다. 절대 악의는 없다. 특히 엄마는 사물의 이름을 마음대로 기억하는 재능이 있다. 오늘은 그 몇 가지 예를 적어보겠다.
1. 친구 손녀의 선물
엄마 친구가 5살 난 손녀 선물을 사주고 싶은데 뭘 사줘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전화로 엄마와 선물 목록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우리 엄마는 내가 인터넷 쇼핑을 잘하니 대신 좋아할 만한 걸로 알아봐 주겠노라 호기롭게 말했다. 테레비 광고에서 대충 본 게 있다고 나에게 자꾸 시진핑인형을 검색해서 가격이 적당한 걸로 알아봐 달라고 했다.
시진핑... 많이 들어봤는데 뭐더라.
나도 어디선가 자주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서 뭔지 알 것 같은데 정확하게 뭔지 몰라 엄마한테 물으니 요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인형이라고 했다.
오호라 귀여운 시진핑 인형이라. 그래서 인터넷을 이름을 쳐보니 어머낫 이게 뭐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제7대 주석이자 독재자란 익숙한 사람이 화면에 떡하니 검색되었다. 그래 이 사람이었어. 내가 아는 시진핑은. 그럼 뭘까 엄마가 말한 귀여운 시진핑이란.
엄마를 불러 사진을 보여주니 엄마는 화들짝 놀래서 이런 게(?) 아니고 말인지 쥐인 지 색깔 있는 소중한 인형이라고 했다. 본인은 이제껏 그 캐릭터를 시진핑이라 알고 있었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이버 검색창에 '시로 시작되는 인형''핑인형''말 인형''쥐 인형' 온갖 단어를 다 검색한 후에 그제야 엄마가 말한 귀여운 시진핑 이란 인형은,
나야 나 티니핑!
머리털 달린 귀여운 동물친구!
뀨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서 이 귀여운 캐릭터 얼굴에서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연상시킨 걸까.
우리 엄마 머리에 한번 각인된 단어는 절대 바뀌지 않는데 저번 손석구손석희 사건처럼 여러 번 티니핑이라고 알려줘도 여전히 엄마에게는 저 귀여운 캐릭터인형은 시진핑이다.
2. 엄마의 최애 음식
하루는 엄마가 나에게 아프로가르트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화려한 제목을 가진 샌드위치라서 또 어디 건강프로그램에서 의사가 몸에 좋다는 식재료 앞글자만 따서 만들어낸 끔찍한 혼종의 샌드위치인줄 알았는데 내가 예전에 한번 만들어준 적이 있다고 갑자기 그걸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도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실험해서 먹어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엄마한테 여러 가지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준 적이 많아 그중 하나 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번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아프로가르트 아프로가르트 단어를 반복하면서 왜 그걸 기억 못 하냐고 오히려 답답해했다.
그게 뭘까 아프로가르트.
중세시대 기사 이름 갖기도 하고. 마법 주문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재료를 사 오면 해줄 테니 일단 그게 뭔지 사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1시간 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엄마의 장바구니 속에서 5개짜리 한 묶음으로 옹기종기 들어있는 아보카도가 들어있었다.
아.
3.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2023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스타일로 도전하고 싶어 헤어트렌드를 검색하는데 엄마가 나보고 이번에 네덜란드컷으로 자르라 했다. 이번엔 뭘 대충 주워 들었을까. 엄마가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엄마 순서 앞 젊은 아가씨가 네덜란드컷으로 잘랐는데 너무 스타일 있어 보이고 세련된 도시여자 같아 보였다면서 나에게 적극 추천했다.
알고 싶다 네덜란드컷이 무엇일까.네덜란드는 풍차가 유명하니 풍차모양컷인가. 단어에서 도저히 알아낼 단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