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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r 02. 2023

은밀한 건 처음이라.

50

첫 번째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을 때, 필리핀 선생님의 추천으로 찐 현지인만 간다는 외진 곳의 오오오래된 마사지샵을 찾아갔다. 이미 외관에서부터 이곳에 네발로 기어들어왔다가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게 해 주리라의 마사지 장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정문인지 쪽문인지 애매한 문으로 들어가니 카운터 앞에 마사지사 분들이 4-5분 앉아계셨고 외지인의 방문에 놀래하면서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요금은 오일 마사지 60분에 8천 원, 90분에 만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했다.


결제를 먼저 하고 대기하는 마사지사들 중 원하는 사람을 뽑아서 안내를 받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나와 친구는 그중 가장 힘쎄보이는 우람한 여성분들로 골랐다. 그들을 따라 카운터 옆 문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복도가 나왔고 오른쪽에 있는 의자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는 곧 웰컴드링크와 꽃송이가 띄어져 있는 물통을 들고 왔고 간단하게 족욕을 시켜줬다.


나는 그 당시 마사지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생소하고 새로웠다. 족욕을 다하고 마사지사를 따라 복도 끝쪽으로 가니 커튼으로 나눠진 마사지룸이 나왔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마사지사가 나보고 옷을 벗고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면서 간단한 영어로 말했는데 강한 그녀의 필리핀식 영어발음과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의 대환장파티로 그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채지 못했지만 대충 곧 마사지를 받을 것이니 입고 있는 옷을 벗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실 옷을 벗는 것도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지만 어디까지 옷을 벗어야 하는지 몰라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 where...  cloth?" (어디까지 옷을 벗어야 하나요?)

"  (어디에서 벗으라는 뜻인가).. here"


대화종료.


대충 눈치껏 알아서 벗으라는 거 같아 티셔츠, 바지, 양말까지 다 벗고 아래위 속옷만 입은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는데 마사지용품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 내 마사지사가 나를 보고 속옷도 벗어라는 손짓을 했다. 전부 다 벗어야 하는 건가 상당히 혼란스러워 용기 내서 물었다.


"... 팬티 노 오케이? 팬티 노?" (팬티는 안 벗어도 되나요?)


무슨 빈지노 부르는 것처럼 계속 나는 팬티노팬티노를 말했고, 내 말귀를 못 알아들은 마사지사는 그냥 대충 yes라 대답했다. 그 말을 곧 부정의 부정으로 알아들은 나는 아하! 전부 벗어라는 말이군 싶어서 일단 브래지어 먼저 벗고 떨리는 두 손으로 뒤돌아서서 팬티를 주섬주섬 멋쩍게 벗고 있는데, 마사지 준비를 다 끝난 마사지사가 들어와서는 뜬금없는 나의 엉덩이 커밍아웃을 보고선 갑자기 다급하게,

팬티 예스! 팬티 예스! 를 외쳤다.


아하, 팬티만 빼고 다 벗어라는 뜻이었군. 유레카!


그렇게 한바탕 망신을 당하고 나는 마사지 테이블에 엎드려 누웠다. 그녀가 오일을 잔뜩 바르고는 천천히 마사지를 해줬다. 이것이 천국이로구나. 황홀감에 젖어 기분이 몽롱 해질 때쯤 그녀가 나의 등을 툭툭 쳤다. 잠에서 깬 나는 순간 필리핀 선생님이 해준 말이 생각이 났다. 마사지를 받다 보면 중간중간 마사지사가 세기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손님이 원하는 강도가 있으면 요구에 맞게 마사지 압을 조절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상태로 너무 좋아 "굿굿"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3분이 지났을까, 다시 마사지사가 나의 등을 두 번 두드렸다. 나는 좀 전에 표현한 나의 긍정의 영어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나 싶어 다시 그녀에게 " 베리 굿"이라고 해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1분 지나지 않아 다시 그녀가 내 등을 여러 번 쳐댔다. 슈벌 얼마나 대단한 리액션을 원하는 거야 싶어. 상체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 베리 굿굿 아이 라이크 아이 라이크" (당신의 마사지는 대단합니다. 나는 굉장히 만족합니다)라 말하니 그녀가 나를 병신 보듯 하더니 이내 곧,

터..턴 어라운드..  (... 제발 쫌.. 돌아누우세요 이 코리안놈아.)


아하, 돌아누우라는 뜻이었군. 유레카!


그렇게 나는 앞으로 돌아누웠고, 그녀는 내가 민망할까 나의 앞판을 커다란 수건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마사지. 더욱 야무진 그녀의 마사지 기술에 잠이 솔솔 쏟아졌고, 마사지를 몇 번 받아본 친구가 필리핀에서는 마사지를 받다가 잠이 들면 마사지사들이 눈치껏 살살 주물러 준해서 나는 잠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현란한 손기술에 혼이 나가듯 잠이 쏟아졌고 그럴수록 나는 정신이 멀쩡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두 눈을 있는 힘껏 부릅뜨고 천장만 쳐다봤다.

나 안 잔다.

두 눈 부알부알.


나의 눈이 부담스러웠던 마사지사는 계속 곁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고 그렇게 마사지를 받는 건지 그녀를 감시하는 건지 모를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의 존재가 불편했던 그녀는 커튼너머에 있는 그녀의 동료에게 따갈로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 "#&×÷'..  이 년 정상아냐  오늘 똥 밟았어" 라 내 욕을 했던 거 같다 껄껄.


마사지가 끝났고 그녀는 나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시간을 주고 방에서 나갔다. 그새 그녀가 나의 만행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지 마사지샵 분위기가 나의 느낌상 쑥떡거리는 기분이었고 가게 나가기 전 내 마사지사에게 "마이 미스테이크 베리 쏘리"라 말하고 고마운 마음에 팁으로 200페소를 건넸다 *보통 팁으로 50페소 정도 준다고 합니다.


그녀는 거의 엎드려 절하듯 나의 두 손을 꼭 감싸 쥐고는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진실의 건치웃음을 보이며 다음에 제발  다시 오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버선발로 저 멀리까지 배웅해 주었다. 


마사지를 받긴 받았는데 왠지 그날 나의 육체와 정신은 더욱 피폐하고 피곤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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