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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탄 Jan 04. 2023

그 어느 길 위에서든, 부디

'하노이에 사는 딸'과 '서울에 사는 엄마'의 통화

“만두 겨울 방학이 언제니?”

“베트남 학교에 무슨 겨울방학이 있어. 12월 말에 며칠 쉬고, 설 연휴에 쉰다고 했잖아.” 

“아, 그랬나?”

“왜? 겨울에 베트남 올래?”

“아니, 내가 만두 방학도 아닌데 거기 가서 뭐 하니.”


사실 엄마가 베트남 사는 손자의 겨울방학 기간을 물어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마는 오빠의 딸인 손녀를 돌보며 지내고 있는데, 손녀가 내년 3월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2주간 가족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덕분에 엄마에게는 2주간의 휴가가 생겼다. 엄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했으나, 오빠는 일본은 더 늙어서 힘없어도 갈 수 있는 곳이니 시간이 있을 때 멀리 가야만 한다고 했단다. 배낭여행 같은 건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오빠의 말이었지만, 늘 그랬듯 엄마는 아들의 말에는 일절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일본 여행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오빠 말대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멀리, 더 힘든 곳을 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몸이 건강한 것 이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이지만 가족 없이 ‘엄마 홀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멀리 있는 유럽보다 가까운 거리의 일본이 엄마에게 덜 부담스러울 테고, 거리가 먼 만큼 긴 일정을 함께할 친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실제로 엄마 친구들은 대부분 몸 어딘가가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거나, 여전히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일을 하고 있다는 엄마의 친구들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으나 엄마는 얼토당토 없는 질문이라는 듯이 갑자기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며 나를 쏘아붙였다.


“얘는!! 이 나이에 엄마들이 애 보거나 주방에서 일하는 거지, 뭘 더 하겠니?”


자랑스러운 효자 아들에겐 늘 고분고분한 엄마지만 가끔씩 딸에겐 엄한 타이밍에서 이렇게 역정을 내곤 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그런 엄마의 비수가 내 가슴에 내리 꽂히기 전, 이번엔 묘한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60대 중후반의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이 뒤늦게 다시 ‘황혼 육아’를 해야 하거나, 젊은 시절 경력 단절 여성이 된 이후로 여태껏 힘든 노동으로 경제 활동을 해올 수밖에 없다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사실들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노동으로 여전히 바쁜 삶을 사는 게 아닌 노년의 여성들은 며칠씩 집 밖에서 잠을 자는 게 겁날 정도로 이미 어딘가가 하나씩 크게 고장이 나 있거나, 백만 원이 조금 넘는 일본 여행 패키지를 훅 떠나기에는 여전히 남편이나 자식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여행을 못 가게 되는 저마다의 사정이 나를 참 슬프게 했다. 나중에 나는 저 중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젊은 시절의 그녀들은 지금의 이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혼자 한번 떠나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아들이 아닌 딸의 말을 곱게 들을 리도 없고, 엄마의 여행은 분명 나의 것과 다른 것이니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여행이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라면 엄마에겐 현실에서 못다 한 쉼을 누리고, 고단했던 젊은 시절을 보상해 줄 여행이 필요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 정도는 누려도 돼.’라고 위안을 받는 것이 엄마의 여행에서 가장 큰 목적이었다. 60대 중후반의 여자들이 한겨울 일본에 가서 따듯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근사한 식사도 하면서 한동안, 아니면 평생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어느 정도의 대접’을 받고 오는 것을 상상해 봤다. 목청껏 웃는 그 여자들의 모습에 내 몸의 고단함도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일본 여행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짜증 섞인 엄마의 아빠 험담을 한 귀로 흘려 들었다.





“나 서유럽 가기로 했어!

“응? 일본 안 가고?”

“네 오빠가 일본은 나중에 힘없을 때도 갈 수 있다면서 유럽 가라고 난리를 치잖아.” 

“누구랑 가는데?”

“기영 엄마랑. 이번에는 일 정말 그만둔데. 이제 몸이 아파서 힘들어서 못하겠데.”

“잘됐네.”

“근데 내가 홈쇼핑에서 서유럽 6개국 12일짜리 00 투어 상품이 뜨길래 예약했거든. 근데 얘네가 전화가 안 와."

“12일에 6개국? 뭐 이렇게 많이 가? 비행기 왔다 갔다 앞뒤 이틀 빼면 하루 찍고 다른 나라 이동이잖아.”

“아니, 그래도 몇 개는 가봐야지. 그렇게 다녀오고 나중에 좋은데 있으면 또 그 나라만 가면 되지.”

“엄마 그런 대형 여행사 패키지는 현지 랜드사에 다시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아. 현지 가이드들이 데리고 다니는 쇼핑도 의무적으로 많이 해야 하고, 팁도 많이 줘야 하고 힘들어.”

“야!! 가만히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버럭, 엄마가 뜬금없이 또 소리를 질렀다. 나는 본능적으로 화면에 내 얼굴을 1/3만 나오게 잡았다. 화내는 엄마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그 모습을 피하는 내 굳은 얼굴을 보여주기도 싫기 때문이다. 내 이마만 화면에 비친 채로 엄마의 말을 들었다. 이야기인즉슨 엄마 친구는 비행기 타고 외국을 나가 본 지 20년도 더 되었고, 혼자서 비행기 타고 베트남 딸네 집을 드나든 지 13년 째인데다가 추진력 좋은 엄마가 패키지 예약부터 준비까지 다 하게 생긴 모양이었다. 일본에 갈까 하다가 오빠의 권유에 떠밀려 갑자기 서유럽에 가게 생겼는데, 급한 성격대로 보이는 데로 일단 예약을 덜컥해 버린 것이다. 서유럽을 가고 싶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들보다 딸이 편했다.


“그러니까 네가 다른 여행사 좀 알아봐.”

“6개국은 너무 심한데, 한나라에서 도시 두어 군데만 봐도 한 3~4개국이면 충분히 많이 보는 거야. 6개국은 너무 힘들어.”

“그럼 한 네 개 나라 정도 가는 걸로 해. 난 스위스랑 이탈리아는 가보고 싶어.”

“스위스? 아, 엄마 그 유해진이 다른 배우들이랑 캠핑하는 그 프로그램 봤구나?”

“내가 왜 캠핑을 하니? 나 티비 잘 안 보는 거 몰라? 얘는 말할 때 보면 지 아빠랑 똑같아.” 

“아니, 캠핑하라는 게 아니라...... 그럼 엄마는 스위스 왜 가고 싶은데?”

“추운 겨울에 스위스에서 눈을 볼 수 있을 거 아니야.”

“설산은 스위스에서 한 여름에도 볼 수 있어. 엄마가 제일 보고 싶은 게 뭔지를 말해봐. 가서 자연경관 같은 걸 보고 싶은 거야? 아름다운 유럽 옛날 마을을 가보고 싶은 거야? 아니면 에펠 탑 같이 유명한 것들?”

“아니, 엄마 친구는 뭐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지금 다 해야 한다니까!”

“그 이모는 경제적 부담이 없는 거야? 공정여행사 상품도 있어. 조금 비싸지만 쇼핑도 강제로 안 하고 소 그룹이고 각자한테 더 맞춰주고...... “

“야! 내가 너한테 공정여행 설명 듣자는 게 아니잖아!! 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엄마! 제발 소리 좀 안 지르면 안 돼?”


참다못해 내가 한마디 하자 이번엔 엄마의 화면에 천장이 보인다.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둔 모양이다. 분명 오늘도 아빠랑 한바탕 하던 감정을 나에게 쏟아부은 거겠지. 엄마의 상황은 늘 이해되지만 ‘이게 이렇게 나에게 화를 낼 일인가’ 싶어 억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아들에게는 생전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로부터 다 털지 못한 울화를 털어내는 곳은 오롯이 나였다. 마침 샤워를 마친 만두가 수건을 찾았고, 다행히도 갑자기 무선 인터넷 연결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만두가 홀딱 벗고 있는데 수건 가져다 달래. 나 가봐야 해. 내가 서유럽 알아볼게.”

“……..”

“내가 더 알아보고 전화할게. 끊는다!!”

“.…….”


오늘도 평행선 같은 팽팽한 대화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위안을 위해 얼른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엄마의 감정을 더 받아내다가는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그걸 털어버리게 될 까봐 겁이 났다. 엄마의 공정여행은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가 아빠로부터 떠난 여행지에서 남들 다 하는 대로 똑같이 보고 찍고 먹고, 부디 너그러운 가이드와 패키지 팀을 만나 끝까지 큰 감정싸움 없이 마무리를 잘하고 와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오래도록 자랑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엄마의 여행지가 어디든 상관없다. 60대 후반의 그녀들이 어디론가 다시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떤 위안이든 받고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기대, 긴장, 두려움, 반가움, 만족, 흥분, 기쁨, 슬픔, 놀람, 억울함, 아쉬움 등 낯선 땅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들이 엄마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진다면 그때는 ‘엄마와의 통화가 조금은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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