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should we then live?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by 모래바다



5.18광주 항쟁을 전후로 한 20대, 그때 특히 나는, 그 당시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사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은 선과 악의 대립이 서양식 이분법이라며 비난했지만 내가 보기에 세상은 분명 선과 악의 싸움처럼 보였고 또 악이 우세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몸에 석유를 뿌린 채 성냥불을 붙였고 최루탄에 맞아 죽기도 했으며 실명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높은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연약한 육체들은 음습한 술집에서 대낮에도 술을 퍼마시며 악을 성토했다.


악은 크고 거대한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나의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의 편집부장은 똑똑했으나 거칠었다. 인간이 한 순간에 저렇게 큰 소리를 지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그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점심을 먹고 난 후 소화제를 먹었다. 하루종일 쓴 원고지를 얼굴에 뿌리고 전화통은 바닥에 내던져졌다. 화가 나면 이단 옆차기로 캐비닛을 차기도 했다. 서로 가치와 이상만 맞으면 라면만 먹으면서 일하다가 어느 차가운 마루바닥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도 좋으리라고 호기에 차있던 20대에 만난 첫 직장이었다.



금방 한 주장을 아무런 반성도 없이 하룻만에 갈아치우는 사람도 만났고 앞에서는 온갖 칭찬을 하다가 돌아서면 욕을 해대는 사람도 만났다. 서툴게 욕을 해서 금세 들키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교묘해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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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 얼굴이 붉어지지 않고 속이는 것을 삶의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 마음 없는 말로도 사람을 믿게 할 수 있다고 오만을 떠는 사람, 억압과 술수를 지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폭력과 무뚝뚝함을 카리스마라고 오해하는 사람, 교활함을 출세의 도구라고 믿는 사람, 위선적 이중 플레이를 처세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잘못은 빨리 잊고 남의 잘못은 두고두고 공격하는 사람, 허약한 정의감을 원만한 성격이라고 오해하는 사람,


누가 봐도 분명한 악을 옆에 두고 그것을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럼으로써 절대 손해보지 않는 사람, 생색나지 않는 곳에는 절대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 사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생색이 날거라고 예측되어야만 돈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 어쩌다 부득이한 자선을 베풀고 그것이 소문나지 않아 안달하는 사람, 검은 돈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고 평소에 말하지만 누가 주면 어떻게 거절하냐며 받는 사람, 중용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중간(매사에 판단을 미룸, 특히 손해될 것 같은 일에)인 사람, 자기가 조금 손해볼 것 같으면 반드시 타인에게 큰 해를 입히는 하는 사람,


용기 없음을 가족에 대한 책임감 탓으로 무분별함을 호탕함으로 위장하는 사람, 돈의 넉넉함에서 오는 여유를 무욕에서 오는 평화로 착각하는 사람,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사람, 작은 권력으로 큰 권력을 흉내내는 사람, 돈 때문에 오랜 우정을 이용하는 사람, 돈 때문에 연인을 버리는 사람, 더 나은 영예를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사람, 밥그릇 때문에 쉽게 비전을 포기하는 사람, 세속적 명예로 나의 게으름과 불성실과 안이한 열심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흑백논리를 화끈함이라고 위장하는 사람, 지독한 가족 이기주의(Family Egoism)과 가족사랑을 혼동하는 사람......




그렇다. 내가 이렇게 열거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악하고 경박하며 절망적이었다. 악은 아니더라도,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과 상황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세월을 변명삼아 눈감아줄 정도로 너그러워졌다. 아, 절망하지 않는 악, 지치지 않는 고통!


그렇다. 우리는 이때까지 그러한 사람들(그리고 또 다른 내 안의 나)과 상황들에 대해 욕하고 평가하기 바빴다. 우리는 충분히 욕했고 충분히 손가락질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허약한 윤리와 신념과 의지가 상처입는 것을 미리 막느라 분주했다.


이젠 지겹다. 그만 손가락질하고 한 걸음 나아가자. 수천 년 동안 욕해왔어도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의 말은 거기에 멈추어선 안된다. 우리의 질문은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How should we then live?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사람들과 그런 문제들과 그런 상황들이 엉켜있는 이 세상......


'그러면'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스위스의 '라브리' 공동체를 이끌었던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프랜시스 쉐이퍼가, 몰락해가는 서구 문명의 새로운 전망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의 제목이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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