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168

그랬으면 좋겠다

by 모래바다


sticker sticker

나는 지금까지 솔이를 단 한번도 공주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공주라는 단어가 주는 계급성 때문이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전근대적 계급성을 의식하며 이를 호칭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솔이가 하녀가 되기를 원치 않지만 공주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솔이가 그냥 일상적인 의미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다하며 합리적인 의사 결정 능력을 지닌.


그리고

나는 솔이가 김밥에서 당근이나 시금치를 빼내지 않고 먹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학교 화장실에서 큰 일을 못봐 집에 갈 때까지 참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짜도 싱거워도 그냥 뭐든지 맛있게 먹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옷을 지어입을 줄 알고, 자기 먹을 것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힐려고 하기보다는, 손에 닿는 물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줄증에 빠진 친구를 위해 아침부터 장을 보고 하루종일 음식을 준비해 저녁식사를 대접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남자의 사랑을 기다리며 앉아있기보다는 많은 인간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치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바람과 비와 하늘과 구름과 나무를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충고를 기다리며 방안에 앉아 우두커니 앉아있기보다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개척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고 경험해야 할 신비'라는 체스터턴의 말처럼 사변적인 인간보다는 활동적인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쓰기보다는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일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려한 궁궐 안에서의 잿빛 행복보다는 들판의 바람을 운명처럼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60528_162231.jpg?type=w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