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일요일 낮엔 솔이와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
언젠가 '목숨'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호스피스 병동을 기록한 영상물이었다.
거기에는 수학교사 출신의 한 노인이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그는 종종 자장면을 먹기 위해 병원을 이탈하곤 했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그는 아내와 함께 자장면집을 찾아 나섰다가 넘어져 얼굴을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아마 그 영상물을 본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종종 자장면이나 한 번씩 먹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슈타인은 누군가 '죽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이제 더 이상 모짜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는데,
이상하게 이 말과 뒤섞이면서 '죽음이란 더 이상 자장면을 먹지 못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실 그동안 자장면을 많이 먹지 못하고 지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였다.
이제 아주 천천히 먹을 것이다. 아주 오래오래 씹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장면을 먹고 살다가 죽고 싶다.
이는 늘 절제되기만 했던 내 삶의 욕망에 저항한다는, 나 나름의 추상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쳇, 자장면 따위, 내 욕망을 숨죽여야 했다니.
이번 주 일요일에도,
교회를 마치면 솔이와 자장면을 먹으러 갈 것이다.
솔이에게 우리만의 추억을 공유한다는,
부수적인 의미도 선물할 수 있어서 좋다.
사족,
나는 중학교 2학년 즈음에 처음으로 자장면을 먹어 보았다.
그때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자장면을 사 주었던 사람은 이웃집에 살던 형이었는데, 그는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쯤 많았다.
사실 별로 친근하게 지냈던 것도 아닌데, 그 형은 다정하게 나에게 자장면을 사 주었다.
종종 그 형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