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께
솔이 담임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솔이 아빠입니다.
1년 동안 철없는 어린 아이들 가르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도 힘들어서 쩔쩔 매는데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아니 가르친다기보다는 돌보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솔이는 몸도 마음도 지식의 넓이도 많이 자랐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다 선생님의 노고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학교 가는 것이 재밌다던 솔이는 4월 경부터 조금씩 힘들어 하더군요. 다행히도 타고난 긍정성 때문인지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갈 수는 없잖아?’라며 군말 없이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그래도 솔이가 내색은 안했지만 1학기까지는 학교 가는 일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가 자기도 학습지를 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저희 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솔이가 수업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해 학교에서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문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3학년까지는 맘껏 놀게 하는 게 좋다’라고 주장하기에 그렇게만 생각하고 전혀 공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부랴부랴 집에서 조금씩 공부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성했지요. 어차피 학교에 다니는 이상, 중간 정도는 따라 갈 수 있게 공부에 조금 관심을 가져야겠다구요.
어쨌든 2학기가 지나면서 솔이는 학교에 부쩍 흥미를 느끼는 듯 합니다. ‘요새 공부가 좀 재밌더라.’라며 우리를 안심시키기도 했습니다. 다 1년 동안 1학년 1반을 이끌어 오신 선생님의 많은 노력 덕분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잠자리에서 솔이가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가사가 너무 좋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모두 다 꽃이야’라는 동요더군요.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담임선생님이 가르쳐줬다더군요. 저는 선생님이 어떤 교육관을 가진 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종종 그렇게 노래도 가르쳐주신다고 하더군요. 솔이가 그런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이 감사했습니다. 여름방학 전에도 그랬는데 며칠 전에도 솔이가 그러더군요. 이제 방학하면 선생님 못 만나니까 가끔 학교에 선생님 만나러 가자구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너무 순수해서 제 마음이 다 안타까웠습니다.
2학기 들어 솔이가 자기는 친구가 없다며 늘 혼자라고 말했습니다. 등하굣길에 친구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카톡도 주고받는 것 같은데 자꾸 자기는 친구가 없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교생활이 재밌다고 했습니다. 친구들도 몇 명 생겼다고 하더군요. 1반에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물었더니 담임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어떤 면이 제일 좋냐고 물었더니 잘 가르쳐서 제일 좋다더군요. 제가 반복해서 물어보았는데 ‘정말 잘 가르쳐주신다’며 강조를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할 뿐입니다.
엊그제는 솔이가 가방에서 귀여운 수면양말을 꺼냈습니다. 솔이는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을 ‘귀엽지 않냐’고 물으며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다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가 스승님께 선물을 해야 도리인데, 오히려 선생님이 온 몸으로 도리를 가르치신다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습니다. 솔이가 언젠가부터 ‘경험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솔이의 초등학교 1학년이 높은 경험치로 기억될 것 같아서 저도 기뻤습니다.
1년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잘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 경험의 DNA가 평생 좋은 품성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이 캐내신 돌들이 언젠가 필요한 곳에 잘 쓰여 튼튼한 세상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선생님은 다 알 수 없겠지만요.
다시 한 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18일 솔이 아빠 드림
솔이가 겨울 방학을 했다. 솔이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썼다. 30년 동안 선생 노릇을 하면서 부모님들이나 아이들에게 감사의 글 한 편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 우리는 그토록 감사에 인색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를 가르쳐준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학교 앞 건널목에서 아침마다 교통지도를 하시는 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그저 공손한 인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이다. 잠시 스쳐갔던 분들일지라도 솔이와 조우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 아이는 결코 혼자 자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