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요즘 들어 솔이는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 선물하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날에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이 머리 속에 각인된 듯 하다. 자신의 생일이 일찍 지나갔다고 짜증을 부리는가 하면 아빠의 생일을 기다리기도 한다. 물론 아직은 아빠나 엄마의 생일은 기억도 하지 못한다. 크리스마스나 명절에 유치원 같은 데서 만든 작은 카드를 멋적게 내밀 뿐이다. 선물을 사달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런 의미를 지닌 말들도 자주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날이라고 인형같은 것을 선물로 받고 싶지는 않지만 나중에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벌면 선물을 사줄 수도 있는 거고...뭐 그렇지' 같은 말이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휴대폰을 보던 솔이가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 아빠 내년에는 제가 돈을 모아서 좋은 휴대폰으로 바꿔 드릴게요.
허걱.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조금 목이 메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린 아이의 철없는 공약에 감동해서 그랬을 리는 없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울컥함이 한 순간 나를 무너지게 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문득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울컥함의 본질은 다분히 물질적인 것에 맞닿아 있었다. 줄여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값비싼 선물을 몇 번쯤 받아본 적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아낌 없이, 대가 없이, 값비싼 물질성을 주겠다는 선언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랬다. 늘 나는 내가 돈을 벌어서 휴대폰(물질성)을 사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누군가 '내가 휴대폰 하나 사줄게' 같은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는 뜻도 될 것이다. 어린 아이 시절에나 가질 법한 그런 마음을 반 백년이 지난 어른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 아닌가. 직장을 은퇴한 중년의 나이, 이제 별로 부끄러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는, 그런 무덤덤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어떤 물질성을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쑥스럽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일정한 나이 이후로 나의 물질성을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책무감이, 한 순간의 여유도 없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회한이 든다. 모든 물질의 문제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삶의 처연함이 갑자기 나를 슬픔으로 내몬 것이다. 그래서 솔이의 별 뜻 없는 그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솔이는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모아 1백만원 이상을 저축하고 있다. 종종 농담 삼아 그 돈을 써도 되겠냐고 물으면 솔이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아빠 엄마가 기분 나쁘지 않게 자신의 거절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느라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솔이는 나에게 새 휴대폰을 사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아니 그 말의 물질성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물질성조차도 선물해주기를 망서리는, 그런 옹졸함으로 구겨진 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대가 없이 아낌 없이 이웃에게 어떤 물질성을 내어주지 못하는 건조함을 부둥켜 안고, 오늘도 작은 손해가 나에게 다가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아주 작은 물질적 손해에도 예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패자부활전 없이 한 번 나동그라지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 살벌한 분위기 말이다. 아주 작은 물질을 획득하기 위해 아주 귀한 시간과 고달픈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나도 한번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싼 밥도 사주고 싶고, 비싼 선물도 해주고 싶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말의 위로 못지 않게 물질적 위로도 해 주고 싶다. 돈을 원수처럼 생각했던 젊은 시절이 조금 후회도 되는 요즈음이다. 돈을 너무 우상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돈에 대한 욕망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악의 뿌리라는 격언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