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19
라디오에서 한 아나운서가 이야기했다.
중학교 시낭송회 때 자신의 목소리를 색다르다며 칭찬했던 선생님에 대해서.
칭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몇 장면이 있다.
가장 먼저,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생각난다.
운동장에서 축구부 아이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축구부가 아닌 우리들이 운동장 한켠에서 놀고 있는데 연습공이 내쪽으로 굴러왔다.
나는 그저 힘차게 연습공을 되돌려 찼을 뿐인데, 축구부 감독 선생님이 즉시 나를 불렀다.
- 너 공 잘 찬다. 축구부 들어오지 않을래?
나는 곧바로 축구부가 되었다. 그때의 흥분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우리학교 축구팀은 전국대회에도 참여할만큼 실력 있는 축구부였기에 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해 본다.
단 한 번 공차는 걸 보고 감독님은 정말 나의 재능을 알아봤던 것일까.
50여년 전의 이 작은 사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장면.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수업시간에 소란하나 성적은 좋음.'이라고 썼다. 언제 떠올려도 기분이 좋은 말이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잘했다는, 빗나간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세 번째 장면.
학교에 근무할 때 희고 긴 손가락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의 뻔한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신입생들이 들어올 때마디 같은 이야기를 해 주니까 괜한 자긍심이 생겼다.
네 번째 장면.
퇴직하고 탁구를 치기 시작했는데, 몇 년 만에 동호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상이어서 너무 기뻤다. 뿌듯한 마음에 벽에 붙여 놓았다.
예순 넘게 살면서 언뜻 떠오르는 칭찬이 이뿐이라니 좀 아쉽다. 또다른 칭찬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몇 안되는 이런 기억들이 생애 순간순간 큰 힘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진심으로 인정해주면 그 사람의 다른 능력들까지 탄력을 받아 살아날 수도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적어도 삶의 위기 때, 나를 일으켜세우는 적잖은 에너지가 될 게 분명하다. 너무 잦은 칭찬의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급조되거나 꾸민 칭찬이라도 표현해 주는 것이 훨씬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칭찬#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