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18
종종 신문기사를 '듣기'로 읽을 때가 있다.
요즘 신문기사엔 스피커 기능이 달려있어 기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지면서 생긴 변화이다.
물론 기사를 읽어주는 AI가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다.
가장 어색한 부분은 된소리로 읽어야 할 대목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예를 들어, '성적 지향'을 '성쩍 지향'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성적 지향'이라고 읽는다.
이런 어색한 발음은 기사 하나를 읽는데 한 두번 등장한다.
그래서 크게 불편하다고는 할 수 없다.
정보나 주장을 담은 소프트한 기사를 읽을 때 제격이다.
하지만 정말 적응이 안되는 경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도드라진다.
기사가 계속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끝나 버리는 경우이다.
AI목소리는 분명 기사가 계속 이이질 것 같은 말투인데 기사는 이미 끝나 있는 것이다.
혹시 기사가 더 이어지는데 끝난 건 아닐까 확인해 보지만, 더 이상의 기사는 없다.
나는 이를 통해 글을 읽는 것이 단지 단어나 조사의 기계적 연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투도 처음, 중간, 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끝날 때가 되면 우리의 말투 속에 이 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암암리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단어나 문장이나 단락 그리고 조사나 어미 모두를, 우리는 글의 내용에 따라 다른 말투로 읽게 된다.
특별히 배워서라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언어적 교감을 통해 자연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과연 AI목소리가 이런 것까지 구현하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기술의 속도로 보면 상당히 근접하긴 하겠지만, 인간의 말투에 담긴 언어적 감성을 완벽히 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설사 설명문이나 논설문 같은 글은 접근이 용이할지라도 소설이나 시, 수필 같이 인간의 감성을 담는 글을 흉내내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기사는 다 끝났는데, 마치 그것이 계속될 것같은 목소리로 마지막 문장을 읽는 AI목소리.
그래도 고맙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과학이나 역사, 생활을 담은 긴 글들을 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AI목소리#신문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