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31
여권을 만들러 시청에 갔다.
서류를 작성한 후 지문인식기에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올렸다.
직원은 왼손 엄지손가락도 올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직원이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 지문이 나오지 않네요. 새끼손가락으로 해봐야겠어요.
나는 다시 오른손 왼손 새끼손가락을 차례로 지문인식기에 올렸다.
하지만 지문은 인식되지 않았다.
잠시 후 직원이 말했다.
- 아무래도 손이 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옆에 세정액을 바르고 해 주세요.
순간 짜증이 났다.
간단해 보이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다가오는 짜증과 불안감.
세정액을 바른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
하지만 세정액을 바르자 지문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의 양말은 늘 발에서 헛돌았다.
발등에 있어야 할 무늬가 발바닥에 가 있고, 양말의 발가락 부분이 복숭아뼈 근처에 가 있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웃으며 물었다.
- 양말이 왜 이렇게 맨날 돌아가?
어머니가 대답했다.
- 그러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근데 나이가 들면 몸에 물기가 없어. 아마 발에도 물기가 없으니까 양말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그땐 몰랐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되었지만, 실제 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내가 그때 어머니의 나이에 가까워졌으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여자는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남자는 마음에 주름이 생긴다더니, 요즘엔 작은 일에도 마음이 쓰인다.
집에 와 가만히 손가락 지문을 들여다 본다.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많이 건조해진 내 손가락, 그리고 손가락의 주름살, 지문.
그동안
사느라 애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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