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32
뜨겁던 여름이 거의 저물 무렵이었다.
시내 분수대 주변에서 작은 공사가 이루어졌다.
여름꽃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가을꽃들을 심는 공사였다.
심었다기보다는 이식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트럭에 마구 실려온 가을꽃들은, 마치 고장나지 않은 컴퓨터 부속품을 다른 부속품으로 교체하는 듯 함부로 이식되었다.
일하시는 분들의 손은 거침 없었다.
아직 말똥말똥 피어있는 여름꽃들은 가차 없이 분수대에서 뽑혀 버려졌다.
버려진 꽃들은 아스팔트에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여름꽃들을 치워버리고 가을꽃을 보여주겠다는 폭압적 친절이었다.
인간의 착각 중 하나는 꽃이 자신들을 위해 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꽃은 그냥 자신의 시스템에 따라 피고 진다.
그 과정에서 우주의 질서에 부합하고 서로 도움을 준다.
그런데 오로지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이용 수단으로만 여긴다.
그래서 꽃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자신들의 눈의 즐거움을 위해 대상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다.
시민들을 위한다는 명분과 함께.
엄밀히 말하면 꽃도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제 일에 열중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꽃이 인간들에게 시각의 즐거움을 주는 것 뿐이다.
말없고 힘 없다고 함부로 대하는 일, 그것은 업보가 되어 인간에게 닥칠 것이다.
그때 인간들은 입다물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제가 누군가에게 가한 그 일을, 누군가로부터 그대로 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구상의 모든 것들에게 친절과 존중을!
#인생에세이#꽃#인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