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식

연지동 일기50

by 모래바다

퇴직 후 시니어클럽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안전 모니터링이다.

각종 일자리에 배치된 분들에게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고, 고충이나 제안사항 등을 듣는다.


내가 모니터링하는 분은 40명이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니터링을 하는데, 그중 만날 때마다 꼭 음료를 주시는 분이 계신다.

괜찮다고 사양을 하고,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다음 달이면 어김없이 음료를 내미신다.

주로 커피인 경우가 많은데, 커피도 여러 종류를 갖고 다니시며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라 하신다.

자꾸 거절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감사하게 받았다.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분이 다리를 절며 걸었다.

혹시 업무를 수행하다가 다치신 건 아닌 지 걱정되었다.

- 왜 다리를...어디 다치셨어요?


그분은 마치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 내가 늙으막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어. 평생 벌어서 먹고 살고 자식들 키우느라고 정신 없었지 뭐... 노후에 집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힘들게 아파트를 하나 구입한 거야. 그런데 나이도 들고 해서 아파트 명의를 아들 이름으로 해줬거든. 이제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중에 유산 상속 같은 거 하면 세금만 물고 그래야잖아... 근데 그놈의 자식이 아파트를 담보 삼아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지 뭐야...그래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살다 보니 부아가 치밀어서 몇 달 술을 퍼부었거든...근데 내가 당뇨가 있어서 다리가 이렇게 됐다니까...


어르신은 불쑥 등산화처럼 커다란 신을 벗었다.

양말까지 벗어 나에게 발을 보여주었다.

발목은 코끼리 무릎처럼 부어올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 개인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네...당뇨를 생각하지 않고 술을 좀 마셨더니...아이구, 이 일도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



며칠 뒤, 결국 그가 시니어클럽을 그만 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일자리를 그만 둔 지 두어 달이 되었다.

어젠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한 달에 한번 사무적으로 만나는 관계였지만, 퉁퉁 부은 그의 발이 떠올라 그냥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두어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는 인근 도시의 병원에 입원 중이라 했다.

언제 퇴원할 지 기약도 없다고 말했다.

'정말 고맙다'는 그의 말을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뒤늦게 찾아온 삶의 비수를 잘 견디고 다시 일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온세상에 싸래기눈이 내렸다.

우주의 바람들이 우리집 근처로 모여들었다.

문앞 두 그루 단풍나무가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남은 나뭇잎을 떨궜다.

나이가 들어도 삶의 슬픈 소식들은 멈추지 않는다.





#삶#고통#일자리#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