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라고 했지만
나는 '머리에서 손발'로 혹은 '가슴에서 손발'로의 여행'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손발로 이어지지 않는 머리나 가슴이 무슨 소용인가.
나 또한 젊은 시절에는 머리의 예리함과
가슴의 뜨거움을 열렬히 추구했지만,
손발로 이어지지 않는 머리나 가슴은 늘 공허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제 손발의 위대함을 아는 '경지'에는 이르렀다.
나는 요즘 솔이를 통해 이 길을 가고 있다.
한밤중 졸리는 눈을 비비며 솔이의 기저귀를 간다.
새벽, 혼곤한 잠 속에서 겨우겨우 깨어나 솔이의 우유를 탄다.
보고 싶은 뉴스나 다큐 대신 유아용 프로그램을 보고
듣고 싶은 음악 대신 솔이의 음악을 듣는다.
내가 목욕하기 전에 솔이의 목욕물을 먼저 받고
내 종아리의 아픔을 잊고 솔이의 종아리를 주무른다.
내가 읽고 싶은 책 대신 솔이의 책을 함께 읽고
솔이가 답답해 하면 드라이브를 나간다.
안도현의 시구처럼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안도현의 시 '일기' 중에서)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