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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r 16. 2021

햇빛

무심히 거실 창 앞에 섰다 햇빛을 보았다.


햇빛은 검은 나무 데크와 지푸라기 같은  잔디밭을 넉넉한 품으로 안고 있는 듯했고, 그 햇빛 아래서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뜰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대상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빛에 홀려 뜰로 나섰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먼지 앉은 데크와 누런 잔디밭, 그 앞의 울타리 스와 황무지처럼 펼쳐진 비어있는 논, 햇빛은 그 세상을 위로하듯 감싸고 있었다. 햇빛의 품 안에 든 먼지는 더 이상 먼지가 아니었고, 갈빛 메마른 논바닥 역시 더 이상이 메말라 있지 않았다.

꿈속처럼 그 세상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나 역시 그 세상에 들어가 있다.


나는 햇빛에 위로받고 있었다.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친절하고 관대한 위로였다. 가슴속의 냉기와 마음과 몸에 붓기처럼 쌓여있던 피로가 스르르 단단한 빗장을 풀고 있었다.   

햇빛은 다정했고 넉넉했고, 그리고 힘이 있었다,     


햇빛은 이곳으로 이사 와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오래전 읽은 L. 린저의 글이 떠올랐다.

그녀는 꼭 필요한 말만 아주 간단하게 하며 사는 삶을 꿈꾼다 했다. 그를 위해서 집에는 전화기가 없고, 가정부는 말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말’을 빼고 살다가 진정한 다른 삶을 향해 가고 싶다.... 10대 때 그 글을 읽었다, 읽은 당시에는 의아할 뿐 이해할 수 없었다. 글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제목과 주인공, 또는 문장이 부유하는 먼지처럼 머릿속에서 제각기다. 줄 긋기가 잘 되지 않는다. 시간이 이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린저의 글을 이해시키기도 했다. 린저가 꿈꾸던 삶은 세상에 지친 누구라도 한 번쯤 가져보고 싶은 삶일 것이다, 린저가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도.    

   

‘말’을 빼고 살고 싶은  L. 린저가 봤으면 좋아할 집. 이 집은 그런 집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 100여 미터 거리다. 주위는 대부분 논밭과 얕은 둔덕이고, 옆으로 넓은 마당을 가진 갈비 공장이 있다.       

식구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아? 했지만, 나는 살아보고 싶었다. 아파트라면 바랄 수 없는 큼직한 평수와 넓은 마당, 그리고 탁 트인 시야.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여기서 해보고도 싶었다. 예컨대 마당에 빨래를 너는 것, 뒷 뜰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태우는 것, 적막한 시간을 보내는 것...      


살아보고 싶다고 덜컥 살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딸아이들의 부재였다. 딸아이들이 있었다면 외딴집으로의 이사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딸들은 이제 집에 없다.


큰애는 결혼을 해서 떠났고, 둘째는 직장을 따라 나가 있다. 둘째는 처음에는 매주 오더니 이제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나는 딸 방의 문을 항상 열어둔다. 그냥 그렇게 한다. 방문 옆에 있는 하얀색 화장대는 큰 애 대학 입학 선물로 아이가 직접 골라 제 아빠에게서 받은 것이다. 큰애는 그 화장대를 무척 좋아했다.

딸들이 집에 있을 때는 오밀조밀한 물건들로 화장대 서랍들이 터져 나갈 듯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들은 버리라고 몇 번씩 잔소리를 했었다.      


언젠가 생각 없이 연 서랍이, 텅- 비어있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놀랐는지 모르겠다. 더 모르겠는 건 비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서랍을 열 때마다 여전히 놀라는 것이다.      


딸들의 부재는 낯선 장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 한가운데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나의 오랜 애씀과 수고는 이제 벽에 걸린 마른 꽃다발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들의 떠남과 나의 감정은 내가 상상하거나 예상한 것과는 다른 그림이다.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도 그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낯설기만 하다. 그렇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나의 예상을 빗나가는 인생의 낯선 장르들과 마주 해야 할 테니 이 낯섦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내내 실내에서만 자라던 사랑초와 염를 밖에 내놨더니 그예 죽고 말았다. 내 욕심이 과했음이 분명하다. 죽은 식물을 보자니 마음이 안 좋다. 뽑아내고 화분에 다른 식물을 심어야 하는데 쉽게 손이 안 간다. 울타리 팬스 앞에 해바라기와 옥수수를 심어 볼 계획이다. 어제 맘먹고 종자상에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4월 초에 다시 오라고 한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면 햇빛이 거실 더 깊숙이 들어온다. 햇빛 아래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위로와 고요한 평화가 전해져 온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고독과 비루함마저 소중해지는... 외딴집의 반가운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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