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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y 04. 2024

하나님과 꿈

  

-꿈의 기능  

  ‘꿈’은 대부분 긍정의 의미로 쓰인다. 꿈이란 말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헛된 꿈’ ‘꿈 깨’와 같은 몇 가지 경우에 국한된다.     어린아이에게도 청년에게도, 이즈음은 장년에게까지 꿈을 가지라 하고,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 어떨 때는 꿈이 없는 것이 무슨 잘못인 것처럼, 혹은 문제인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이렇게 쓰일 때, ‘꿈’은 대체로 목표나 노력을 통해 도달해야 할 결과물을 의미한다.     

  

  꿈이 이렇게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은 아마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꿈이 있었어요,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은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목회자의 설교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설교에는 늘 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삭의 아들 요셉.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머릿속에 진하게 각인되는 설교가 많지는 않은데, 몇 해 전 들었던 젊은 목사님의 설교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흐려지지 않는 말씀이다. 요셉이 그 설교의 주제였다. 목사님의 설교의 요지는 명료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요셉의 스토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할 때 요셉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요셉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들어오게 할 한 인물이 필요했고,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총리 정도는 되어야 했다. 거기에 발탁된 사람이 요셉일 뿐이었다.]   

  

  형들과 달리 채색옷을 입었던 요셉은 어린 나이라 해도 눈치가 있고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들으면 기분 나쁠 내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묻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반복해서, 곧이곧대로 하는 요셉은 오히려 푼수가 없어 보인다. 그런 요셉이 꿈을 갖고 있었을까? 자기 삶에 대한 계획이 있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젊은 목사님의 설교는 그런 의문에 대한 정확 명료한 답이었다.


  총리라는 자리는 요셉이 이룬 대단한 성취가 아님에 분명하다. 요셉의 삶의 가치는 총리라는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성실함에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치러야 할 대가의 종류나 크기를 생각하지 않았고, 늘 하나님의 종의 위치를 지켰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에도 늘 같은 자세, 같은 위치를 지켰다. 그 한결같은 자세와 실천에서 요셉은 빛 났다.      


  시대에 따라 사람의 성향을 구분 짓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그 성향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신앙을 갖기가 수월한 성향이 있다. 반대로 믿음이 어려운 성향이 존재한다. 원대한 꿈을 갖고 있고, 목표지향적이며 성취를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열심히 산다는 칭찬을 받겠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경우 꿈이나 목표가 하나님을 앞서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부분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으신다.     


  옛 시가에는 시인의 성향따른 주제의식이 선명히 드러난다. 어떤 시는 연군지사를, 어떤 시는 강호한정을 어떤 시는 애끓음을 노래하지만, 삶의 크고 작은 파고를 헤쳐 나온 노시인들의 노래에는 대부분 삶에 대한 관조의 자세가 담겨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격정이나 열정도 그 관조의 자세를 넘을 수는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인이 마침내 도달할 자리도 삶에 대한 관조가 아닐까! 자의식을 넘고 열정과 애태움을 넘어서 만나는 그 자리라면 순종은 쉬울 것이고 모든 결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슬픈

  흔히 생의 가장 푸르른 시절이라고 하는 그때, 나는 꿈이 있었다. 간절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패한 후, 내 꿈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은 것은 내 꿈 자체가 아니라 나의 자세였음을, 나는 하나님보다 내 꿈의 성취가 더 간절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가장 열심히 살았었고 동시에 하나님과 가장 멀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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