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던 옛집은 새카맣게 타버렸다. 언니가 보내온 사진 속에는 정말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기억까지 쓸어가 버린 것 같았다. 참 이상한 게, 좋았던 추억이 별로 없던 곳이었는데 슬펐다. 매일 미워하고 싸우고 힘들어하던 우리의 시간과 기억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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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 핸드폰을 보니 서울에 사는 고향 친구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불이 번져서 난리래. 엄마 괜찮으셔? 어서 연락해봐. 시내까지 연기가 자욱하대’
지난밤 울진, 삼척 지역의 산불 뉴스를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긴 했는데 , 산불이 고향 마을에도 퍼진 모양이었다. 급한 마음에 뉴스를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고향에 산불이 번지고 있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산불 괜…”
“응. 나 지금 대피해야 해”
대피라니? 엄마가 계신 곳 코앞까지 산불이 온 모양이었다.
“지금 산불이 번져서 대피하라고 하네. 일단 대피하고 다시 연락할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다시 뉴스를 찬찬히 살폈다. 밤사이 누군가 낸 불이 크게 번져있었다. 고향은 해마다 봄이면 건조하고 바람이 불어 산불이 늘 걱정인 곳이다. 몇 년 전 큰 산불로 시름시름 앓던 곳인데, 올해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것도 엄마가 대피하는 일이 생기다니.
이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인터넷 뉴스를 새로고침 하고, TV로도 뉴스를 시청하며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다행히 안전하게 대피했고, 엄마 살고 있는 집에는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10여분 거리의 동네에서는 산불이 지속되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서남북으로 난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10여분 거리에 있던 우리의 옛집도 사라져 버렸다. 그날 저녁 엄마는 차분하지만 조금은 놀란 목소리로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새카맣게 탄 옛집은 인터넷 기사에도 희미하게나마 등장했다. 그 집을 이렇게 볼 줄이야.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옛집은 좋은 기억이 별로 없던 곳이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그 집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의 다툼으로 불안한 하루를 보내던 곳, 늘 돈 걱정으로 한숨이 가득했던 곳.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웃음과 한숨도 머물러 있던 곳이었고, 살금살금 마당으로 걸어와 남은 음식을 탐하던 길고양이의 흔적이 머물던 곳이기도 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으며, 지네와 산모기도 많던,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불편한 곳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매년 휴가를 받아도 집에 내려가 쉬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머물면 스트레스만 받다가는 곳이었다. 우리를 출가시키고 한참을 혼자 살던 엄마는 드디어 낡은 옛집에서 벗어나 인근 마을로 이사를 했고, 옛집은 그렇게 남겨졌다.
타버린 옛집은 언니와 형부만 가보았다. 까맣게 무너져버린 옛집을 보며, 언니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씁쓸하고 먹먹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세월들이 언니에게도 잊을 수 없고 힘든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날 옛집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필름 카메라로 담은 사진도 있었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곳은 산에 마을이 들어선 곳이라, 사방이 나무들이었다. 그래서 사계절 풍경이 확연히 달랐다. 그 사계절 풍경 중에서 가장 빛나고 풍요로운 여름의 사진이 많았다. 아픈 기억이 많은 곳이지만, 초록빛 가득한 그 풍경만은 좋아했던 모양이다.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갖고 싶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의 상처와 눈물, 웃음이 남아있던 그곳은 이렇게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사라졌다. 그곳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곳이 되어버렸다. 사진으로 나마 남아서 다행인 곳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시간은 각자의 기억에 남겨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