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마상센터
머리 위로 낯선 형광등이 윙, 윙, 소리를 냈다.
사방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 혼자만 고장 난 듯 멈춰 있었다.
“환자분, 여기 어떻게 오시게 됐는지 기억나세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천장을 올려다봤다.
‘응급실 형광등은 이렇게 생겼구나...’
침대 옆에 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 얼어붙은 시선.
난생처음 마주한 상황 앞에서, 그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보였다.
내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자,
그들은 내가 이제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여긴 듯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틀 정도의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 남편도 출근해야 하고, 아이들 등교도 해야 해서…
입원은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집에 가겠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뒤로,
3일 밤낮을 거의 겨울잠처럼 잤다.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았고,
나 역시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음 날, 남편은 연차를 냈다고 했다.
집안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나를 진정시키는 대신
내 안에 묻어뒀던 질문들을 끝없이 헤집어 놓았다.
둔하게도,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 끝에서야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다.
며칠 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문을 열자, 하얀 가운을 입은 나이 지긋한 교수가
책상 너머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잠은 좀 어떠신가요?”
“… 많이 잡니다.”
“흠, 그래요. 많이 자는데도... 여전히 피곤하죠?”
“네.”
“그렇겠어요.”
“무기력한 기분은… 계속되고요?”
“네.”
의사는 키보드를 천천히 두드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전해지는 연륜과 조용한 안정감 덕분인지
나는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의외로 차분하고 덤덤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가 말했다.
“이건 혜림 씨 혼자 상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요.
가족상담 날짜를 한번 잡아봅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번엔 어쩌면,
정말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 가족 면담이 잡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아빠 옆에서,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순간, 그 방은
정상처럼 보이는 네 사람과
고장 난 사람 한 명으로 채워진 공간이 되었다.
한 시간의 면담은 조용히 끝났고,
바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면담이 끝난 뒤, 조용히 내게 말했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환경이나 사람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러니 작은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바꿔가 봅시다.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를 감당할 힘을 키워야 하고, 나를 돌보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해요.
지금 혜림 씨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이에요.”
그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가족에게서, 일터에서 인정받고 싶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들을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내 안의 연약한 모습도
조금씩은 받아들이며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면담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몸이 아픈 건 아니고, 마음이 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
당분간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대.”
은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은찬이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지켜줘야 할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작지 않은 위로로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가게는 정리하기로 했다.
‘10년 차 안식년’이라는 말로 내 마음을 달래보았다.
가게에서 뺀 보증금은
집 주방을 다시 꾸미는 데 쓰기로 했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나 혼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조용한 부엌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의 진짜 회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 괜찮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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