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못났니?

by 박혜림


“우리 연애할 때, 자긴 정말 반짝거렸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며 남편이 건넨 말이었다.

불쑥 튀어나온 그 한마디가

고요하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빛이 사라진 게.


첫 아이 때는

모유수유로 밤을 지새워도,

서툰 엄마로서 늘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피곤했지만 견딜 수 있었고,

몸이 힘들지언정

적어도 내 존재에 대한 자각은 있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는

뭔가 달라졌다.

배수구에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슬프다, 서럽다, 속상하다—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대신

“지금 해야 할 일부터 하고, 나중에 생각하자”는 말로

모든 감정을 눌러버렸다.

아마도 그때 이미 몸이,

내 대신 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뽀글 파마를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거울 속 그 사람은,

내가 모르는 낯선 얼굴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가족사진을 제출하라는 과제가 나왔다.

사진첩 속에는 아이들 사진,

내가 찍어준 가족사진들 뿐.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어느새 불어난 몸과 생기 없는 맨얼굴이 싫어

일부러 카메라를 피했다.

나의 인생 일부분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늦은 밤,

식탁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시간이

유일하게 나를 마주 보는 시간이었다.


“애 엄마가 돼서 술이나 마시네”

“살만 뒤룩뒤룩 찐 못난이”

못마땅한 말들이

남도 아닌, 내 안에서 먼저 날 찔렀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을 애써 못 들은 척 넘겼다.

그게, 내 하루의 끝이었다.


장녀이자 엄마,

아내이자 며느리,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

어느 하나 가벼운 역할은 없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고,

좀 더 잘해야 한다고,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자리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다.’

조용하고, 무던하고, 침착하게.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고,

또 동시에 아무도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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