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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Feb 17. 2022

전쟁: 그 환상과 참상

영화 〈조조 래빗〉(2019)

창작 뮤지컬 〈호프〉를 인상 깊게 보았다던 친구는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로 '원고'를 의인화한 것을 꼽았다. 이 영화에서 나치에 세뇌당한 어린아이의 내면을 상상 속 절친 히틀러로 묘사한 것도 이와 유사하다. 시각과 청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라는 매체는 사람의 내면을 외적인 것, 예컨대 표정이나 대사, 행동으로 치환해야 한다. 숱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화가 날 때 현실에서보다 과장되고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아주 절묘한 비유를 한 셈이다. 그는 상상 속 히틀러를 등장시킴으로써 세뇌당한 어린이를 독특하고 분명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현실적이게 표현했다. (세뇌의 정도뿐 아니라 우리 모두 어릴 적 상상 속 친구가 있던 걸 생각하면 다분히 현실적이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유대인 소년의 시각에서 유대인 학살의 잔혹성을 드러냈다면, 〈조조 래빗〉은 나치 소년의 시각에서 그 비극을 다룬다. 전자에서는 소년의 천진난만한 시각이 오히려 잔인함을 강조하였는데, 후자에서는 아이의 시각이 전쟁의 우스움을 풍자했다. 유대인에 대한 조조의 말도 안 되는 편견들은 바로 나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조조 래빗〉은 마지막에 사뭇 나치군이 연상되는 연합군의 행태를 보여주면서 보다 보편적인 주제로 나아갔다. 바로 전쟁의 환상과 참상에 대하여.






조조와 히틀러는 죽이 잘 맞는다. 망해가던 나치는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조조와 같은 어린 소년 소녀들을 모아 일종의 청소년 캠프에서 훈련을 시켰는데, 여기서도 조조는 열의를 띤 모습을 보인다. 그는 유대인이 머리에 뿔이 달렸고, 악마를 섬기며, 못생긴 것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의 꿈은 유대인을 잡아다 히틀러의 개인 경호원이 되어 그의 진짜 절친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조조는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토끼조차 죽이지 못하는 순진하고 어린 소년일 뿐이다. 조조가 집에서 유대인 엘사를 발견했을 때 보인 그의 악의는 오히려 순수하다.


조조가 엘사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면서 그는 상상 속 절친 히틀러와 갈등하기 시작한다. 나치와 전쟁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조조의 세상에서 베일이 한 겹씩 벗겨지며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전쟁은 그의 엄마를 교수형에 처하게 했고, 사랑하는 엘사가 새장에 갇히도록 했다. 전쟁은 그의 마을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후반부에 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소련군과 영국군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수간을 한다는 엉터리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유대인에 대한 새빨간 거짓말이 새로운 적에 대한 거짓말로 바뀐 것이다.






조조의 엄마는, 멋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멋쟁이 옷을 입고 항상 같은 구두를 신었다. 끈이 풀린 구두를 신고 다니는 조조를 위해 구두끈을 묶어주곤 했다. 그녀는 반전·평화주의자였고 레지스탕스 일원을 남편으로 둔 아내였다. 사랑과 음악과 춤을 좋아했다. 아무도 몰래 엘사를 보호하고, 아직 어린 조조가 전쟁이나 사회 문제를 생각한다며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한편 캡틴은 청소년 캠프에서 술 따위나 마시고 열의라곤 전혀 없었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캠프에서 떨어져 나가 오갈 곳 없는 조조를 나름대로 보호해주었다. 조조의 엄마가 교수형에 처했을 때 허겁지겁 조조를 찾아온 일, 엘사가 유대인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한 일, 조조에게 그의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위로한 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조조를 살려준 일은 캡틴의 인간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 개개인의 흠결이나 개성있는 삶의 방식은 전쟁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유대인에게 뿔이 달렸고, 악마를 숭배하고, 못생긴 것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죽였다. 마지막에 연합군도 캡틴을 죽인 것은 그저 그가 나치였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람을 오로지 아군과 적군 두 부류로만 구분하여 단 하나의 규칙만 따른다: 적군은 모두 죽인다.


조조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다.



전쟁에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을 경계하고 평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기 위해서.


이 영화는 이 당연한 메시지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과 옳은 행동들, 그를 도와준 주변 사람들과 그가 맺는 관계들. 그를 혼내고 나서 그와 춤을 추는 어른들. 얼굴의 흉터와 저는 다리 때문에 스스로 못생긴 불구라고 생각하는 조조, 그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의 사람들.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거짓말하다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며 새장 문을 연 조조.


이들은 왜 우리가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 같은 훌륭한 성인이어서가 아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데다 때론 뺨을 치고 싶을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표지 출처


조조 래빗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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