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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Jan 21. 2024

흔들리며 피는 꽃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제목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따왔습니다.



Spring barley is Ireland’s most widely grown tillage crop which provides valuable feedstock for the animal feed and malting industries.
봄보리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곡물 작물로, 동물 먹이와 맥아 산업에 중요한 공급원이다.

Teagasc(2015), 「The Spring Barley Guide」, FOREWORD


"내 집에서 나가!"라고 번역된 시네드의 대사는 "Get off my land!"로, 'land'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land'는 그들의 쉼터인 집이자, 보리가 자라나는 땅이요, 조국 아일랜드이다. 대미언, 시네드, 테디를 비롯하여 농장 일꾼으로 일하는 크리스나 지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신의 아일랜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정작 그 아일랜드의 실체는 알 길이 없다.


It's easy to know what you are against,
but quite another to know what you are for.
네가 무엇에 반대하는지는 알기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과는 달라.




대미언이 아일랜드를 지키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대미언은 좋은 일자리와 조국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었다.

그다음에는 함께 독립을 도모하는 동료의 목숨을,

그다음에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그다음에는 사랑하는 이의 명예를,

그다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의 조국에 일자리, 동료, 친구, 사랑하는 이를 지킬 힘과 자신의 목숨마저 없다면 그가 지키고자 하는 아일랜드는 무엇을 지키기 위한 국가일까. 그가 꿈꾸는 아일랜드에는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없다. 보리밭의 흔들리는 보리는 누구를 먹이려고 배불리 자라는가…….


 I hope this Ireland we're fighting for is worth it.
우리가 지키려는 아일랜드가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




대미언이 크리스를 죽일 때에는 그것이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보였다. 크리스의 엄마가 그에게 "다신 너를 보고 싶지 않구나"라고 말했을 때 그는 괴로워했지만, 테디의 심문을 받을 때에도 크리스를 언급하며 자신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미언은 크리스의 죽음을 괴로워할지언정 이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가 요구한 헌신은 그에게 청구된 고혈이기도 하다. 선을 위한 악을 행한다지만 과연 선이 진실된 선이며, 악은 진정한 악인지에 대한 의문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마을을 떠나는 영국인들에게 독립군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 "See you in the hell"은 사뭇 이중적으로 들린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과 더불어 피어난 자기부정을 느낄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를 때 그들은 자신의 그릇됨을 알았다. 그것이 그들의 죄를 가중시키는가, 경감시키는가?




들의 삶을 뒤흔드는 것은 그저 바람이다. 공화주의자의 연설은 다른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졌다. 평화 협정은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멀리서 시작된 그 바람은 그들의 터전을 뒤흔들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개인은 언제나 많은 대가를 치러왔다.


대미언과 크리스의 관계는 테디와 대미언의 관계로 반복된다. 테디에게서 대미안의 모습이 보인다. 대미안에게서 크리스를 발견한다. 시네드는 테디에게 다신은 그를 보고싶지 않다고 절규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군인들의 발소리는 끝나지 않은 채 우리에게 닿는다. 시대의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는 어떤 꽃으로 피어나고, 어떤 열매를 맺으며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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