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파라마운트 드라마 〈와이 우먼 킬〉이 생각난다. 한 집, 세 세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여성들이 같은 세대, 한마을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주디스의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은 시몬을, 반듯해 보이지만 실은 발랑 까진 벡스는 베스를 (이름까지) 닮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힘에 부치는 타니카를 따라가다 보면 테일러가 떠오른다.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총성이 울린 순간! 여성들의 모임 『말로 머더 클럽』은 자신도 모르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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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을 맞추거나 스도쿠의 빈칸을 채우다 보면 겉으로는 문제 될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대로 아직 빈칸이 한참 남았지만 실마리를 잡았다는 희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여타 추리소설과 달리 이 소설은 이런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빈칸'에서.
「책장에서 『볼러시언』교지를 발견했고요. 그리고 74면이 없었습니다. 뜯겨져 있더군요.」
로버트 소로굿, 『말로 머더 클럽』, 열린책들(2024), 359면
벽에 걸린 조정 관련 사진 사이에는 그전에 없던 빈자리가 생겨 있었다.
로버트 소로굿, 『말로 머더 클럽』, 열린책들(2024), 373면
이 부분이야말로… 오늘날의 미스터리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시간도 공간도 텅텅 비어 있었다. 기원전 1세기 1월 1일과 1월 2일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단서는 평소에 없던 물건, 평소와 다른 시간에서 나왔다. 그러나 맥시멀리즘에 치닫는 현대로 접어들며 세상은 까맣게 채워져 있다. 더 이상 여유도 비밀도 없다. 도시는 집과 스캔들로, 집은 다시 물건으로 가득하다. 이제 사람들은 빈 시간에서, 빈 공간에서, 여백에서 답을 찾는다.
사실 나는 내게 2번 규칙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범인이 대체 누구지? 엘리엇 하워드? 앤디 비숍? 의심스러운 사람은 점점 늘어만 가고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범인은 그들 모두였다! 작가는 이미 너무나 많은 미스터리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접한 사람들의 뇌리에 굳게 자리 잡은 몇 가지 규칙을 피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닮은꼴
우리는 추론을 할 때 범행 동기를 따진다. 누군가 그에게 원한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왜 원한을 품었을까?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나?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는, 범죄를 저지르기까지의 마음이 실은 나 자신에게도 있다는 보편적 공감이 깔려있다. 이는 '공감적 태도'와는 다른 본능적인 공감이다. 자연스러워서 거의 잊힌 공감이다.
연쇄살인범이 가면을 쓰고 마을을 활보한다고 여길 때, 우리는 그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숨긴다는 전제를 가정한다. 어째서일까?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주디스가 그랬듯이, 누구나 자신의 크고 작은 결점을 방에 잠근 채 열쇠만 만지작거리며 다른 일에 몰두한다.
주디스의 비밀스러운 결혼생활을 벡스가 아닌 수지가 알아차린 까닭은, 수지와 주디스의 꼭 닮은 아픔에 있다. 주디스의 잘못에 대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저 덮어두기도, 내놓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주디스의 어두운 비밀처럼 우리 모두에겐 어두운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디스가 치러야 할 죗값은, 일흔이 넘도록 그 오랜 세월을 친구 하나 없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살아오고, 또 벗을 수 없는 자신의 잘못을 발견한 사람이 하필이면 겨우 얻은 두 친구라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난 아내를 힘들게 하는 남편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 나는 제일 먼저 반지부터 빼고 싶었어요.」
로버트 소로굿, 같은 책, 383면
1970년의 주디스는 비밀을 은폐할 당시 자신의 잘못이 이렇게 긴 세월,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인물에 의해 밝혀지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세월이라는 강은 흘러 흘러 지금 이곳으로 그녀를 이끌었고, 그녀와 새로 사귄 친구들을 태운 배를 다시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흐른다. 실마리를 맞추면 나머지는 그저 풀리는 수수께끼처럼, 또는선선히 부는 바람처럼.
이제, 강이 굽은 곳으로 가는 중이에요. 내가 흐름만 잘 맞추면 강이 우리를 저절로 데려가도록 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