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쉐르픽, 〈원 데이〉(2024)

by 무화

덱스터라는 배가 있다. 덱스터의 갑판 바닥이 고장나서 고쳤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수리를 거친 배는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20년 이 지난 지금 그 배는 여전히 덱스터라고 불릴까?




수많은 연인이 스쳐간 덱스터의 곁에 엠마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맴돈다.

어느 날에 그는 그리스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어느 날에는 심야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다.

어느 날에는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어느 날에는 청첩장과 초음파 사진을 들고 나타나 엠마를 놀래킨다.


어느 날에는 엠마에게 키스를 주고 번호를 받고,

어느 날에는 엠마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어느 날에는 울면서 엠마를 찾고,

어느 날에는 그저 엠마를 기다린다.


기쁜 날, 슬픈 날, 겁 나는 날, 힘든 날, 그 모든 날에 덱스터는 엠마와 함께이다.

그 모든 날들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덱스터는 자신의 잘못된 행실로 상처입은 엠마의 눈을 마주보며 따끔거리는 마음을 느낀다. 엠마가 처음으로 출간한 책을 읽으며 덱스터가 느끼는 긍지는 자긍심과 같은 감정이다. 덱스터가 편도선염으로 아프다고 하자 같이 아프다는 엠마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의 수치와 벅참의 터널을 함께 지나온 엠마는 덱스터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운명의 장난같던 어느 날이 둘을 하나로 만들어놓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어느 날이 덱스터에게서 엠마를 떼어내도 덱스터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저 쌓아온 날들만큼의 시간을 하루하루 더 쌓아올릴 뿐이다.


덱스터라는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그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엠마를 필요로 했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제 덱스터는 하루를 살아도 두 명치의 몫을 사는 듯 힘이 든다.

덱스터는 여전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人)을 만들려고 두 명이 힘을 합쳐서 겨우 됐는데, 혼자서도 사람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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