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이글루와 오로라 감상

핀란드 이색 허니문

by LEAN

신혼여행을 정할 때 우리의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

오로라 관측으로 유명한 곳은 캐나다 옐로나이프와 아이슬란드, 핀란드의 라플란드 등이 있다. 이 중, 옐로나이프는 가장 멋진 오로라가 나타나는 곳이지만, 일 년 중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반면,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는 일 년 중 오로라가 관측될 가능성이 높은 날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가장 오로라가 잘 보이는 달은 11~3월까지라고 한다. 인생에 오로라를 보러 여행 갈 수 있는 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이번만큼은 3월에 핀란드로 떠나기로 남편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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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텔 캭슬라우타넨 인스타그램

헬싱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 라플란드의 사리셀카로 갔다. 유럽의 최북단이라는 그곳. 가도 가도 눈 밖에 안 보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한국에 있던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창 밖으로는 나무들만 줄지어 서 있었다. 눈과 나무밖에 없고 인적이 드문 풍경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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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호텔 캭슬라우타넨에 도착했다. 발음도 어려운 이 곳에 내리니 정말 이제 낯선 곳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조트 바깥으로는 나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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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숙소였던 통나무 캐빈은 생각보다 넓었고, 사우나도 겸비되어 있었다. 핀란드인들은 찜질방 같은데 안 갈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세계에서 사우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다. 정통 핀란드식 사우나는 뜨거운 돌에 물을 붓는 습식 사우나이다. 주로 뜨거운 탕에서 창 밖으로 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이라이트는 뜨겁게 달궈진 몸으로 얼음이 가득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여행 중에 이곳에서 나체로 뛰어다니는 유럽 청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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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은 호텔 캭슬라우타넨의 글라스 이글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언덕배기에 유리 이글루가 줄줄이 위치해 있었다. 방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라 그런지 비어있는 곳도 많았다. 그리고 가족 단위보다는 커플이나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처음에는 캐리어를 들고 언덕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다가, 다른 사람들을 참고하여 캐리어를 눈썰매에 올려 슥슥 밀었더니 가장 높은 숙소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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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내부에는 의외로 모션베드가 있었다. 전통적인 이누이트 족의 가옥을 현대식으로 바꿔놓은 듯한 퓨전 디자인 호텔이었다. 얼룩말 무늬 베딩은 동물 털 담요에서 연상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엉뚱하고 창의적인 호텔 측의 아이디어가 엿보였다.

글라스 이글루 내부는 몹시 작았다. 게다가 욕실이 딸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씻을 때는 외부에 따로 떨어져 있는 사우나를 이용해야 했다.

눈을 잔뜩 맞았기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외부 사우나에 들어가 보았다. 마치 한증막과 샤워실이 합쳐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탈의실 창문이 낮고 길게 뚫려 있어 바깥에서도 내부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약간은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뜨거운 김을 쐬면서 창 밖의 눈을 바라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글루의 천장은 하늘을 보기 쉽도록 유리로 되어 있었다. 동이 틀 때는 시시각각으로 밝아오는 빛이 느껴졌다. 누운 천장에는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떠 있었다. 어릴 적 천장에 붙여놓던 야광별이 생각났다. 이곳은 마치 누군가가 어린 시절 꿈을 현실로 옮겨놓은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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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인다고 해서 술을 마시다가 때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사람들이 어딘가 먼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가 보았다. 삼각대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초록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은하수 같은 물체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Northern Light 라 불리는 그것은 빠른 구름처럼 하늘로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오로라는 별을 휘감아 이동하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오로라가 나타났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추위에도 불구하고 오로라를 찍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 갈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오로라 사진을 못 찍었다는 것이다. 아이폰으로 야경 사진을 제대로 찍는 법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만 북극의 찬란한 빛을 눈과 머리에 담은데 만족했다. 다른 여행객 분들은 꼭 오로라 사진을 제대로 찍어 오시길 바란다.

se3_image_2942867580.jpg?type=w773 살미아키와 따뜻한 럼주


사리셀카의 음식들은 리조트 내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순록 고기와 요거트, 야생 베리류가 주된 메뉴였다. 핀란드의 국민 간식인 살미아키(Salmiak)도 먹어봤는데, 듣던 대로 정말 최악이었다. 썩은 생선 아니면 빨지 않은 양말 맛이 났다. 살미아키가 세계에서 제일 맛없는 과자 1위로 뽑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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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3_image_1429933103.jpg?type=w773 허스키 개 썰매를 타고 질주하기

다음 날, 순록 썰매와 허스키 개 썰매를 탔다. 그중에 허스키 썰매가 기억에 남았다. 이 북극의 개들은 질주 본능이 있어서 사람이 신호를 보내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2인 1조가 되어 함께 썰매에 타며, 한 명은 서서 허스키들에게 브레이크와 엑셀 신호를 보내고, 다른 한 명은 앉아 있게 된다. 이 독특한 드라이브에서는 생각보다 꽤 먼 거리를 달리게 된다. 야생적인 허스키들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허스키 썰매를 탄 후에는 아기 허스키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따로 울타리에 모여 살고 있는 아기 허스키들은 사람을 매우 좋아하여 아무나 근처에 오면 마구 엉겨붙는다. 친화력이 좋고 마구 장난치기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면 누구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se3_image_1006026029.jpg?type=w773 핀란드 보드카인 코스켄코르바와 맥주 Artic Night

밤에는 핀란드 국민 보드카라고 불리는 코스켄코르바를 나눠 마셨다. 강렬하지만 깔끔한 맛의 보드카였다. 그런데 안주를 찾으려 보니, 사놓은 유일한 안주가 살미아키밖에 없었다. 낮에 과자를 사 오기로 한 내가 겉봉지만 보고 땅콩류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알파벳을 제대로 안 읽은 것이 패인이었다. 살미아키가 유일한 안주라니, 이글루 밖으로 내쫓길 뻔했다.

se3_image_191207299.jpg?type=w773 순록과 눈을 마주친 아침


다음 날은 사리셀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떠나기 전, 이글루 바깥에 순록 한 마리가 도도하게 웅크려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 전날, 썰매꾼에게 순록은 허스키에 비해 예민하여 사람이 다가가면 공격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배운 것이 떠올랐다. 나도 순록의 개인적 공간을 보호해 주기 위해 거리를 두며 살살 눈 위에서 걸음을 옮겼다.


핀란드에서의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서울의 풍경에서 벗어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겨울 여행을 좋아하는 커플이라면 핀란드 라플란드로의 허니문도 도전해 볼 만 하다고 생각된다. 멀고 낯설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나라에 오면 마음속 더러운 것들이 모두 깨끗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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