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 팡라오
"프리다이빙은 물속의 휴식입니다. 극히 미학적이고 시적이며 예술적인 행위입니다."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 기욤 네리는 위와 같이 말했다. 수심 123미터의 깊이에 들어간 최초의 인간이 하는 말은 나에게는 큰 공감이 되지 않았다. 스포츠를 딱히 즐기지 않는 내가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과 불안부터 들었다.
불안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집안일 문제, 학교 문제, 직장생활과 퇴사의 고민 등등. 사소하면서도 갈등을 일으키는 수많은 문제가 언제나 머릿속을 지배했다. 생각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미래를 걱정해왔다. 그런데 프리다이빙을 시작하면서 강사님의 말들이 나에게 꽂혔다.
프리다이빙은 필리핀 보홀의 작은 섬 팡라오에서 도전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이효리 뺨치는 몸매에 털털한 성격을 지닌 여자분이셨다. 처음에 입수할 때만 해도 나는 별생각 없이 팔다리를 휘젓고 고개를 쳐들고 다녔다. 하지만 강사님이 강하게 말씀하셨다. 물속에서도 걷듯이 움직여야 하며, 동작을 크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속에서 나의 숨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다. 몸을 강하게 움직일수록 호흡은 더 딸린다. 그런데 나는 10미터만 들어가도 불안해져서 팔을 휘젓기 마련이었다. 그럴수록 숨은 더 부족해졌고, 물 밖으로 나오기도 더 버거워졌다.
물속에서 중요한 것은 패닉하지 않는 것이다. '패닉 전문'이었던 나는 20미터 정도 들어가고 나서야 그 말의 중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블랙아웃을 겪고 싶지 않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내 발 아래에는 100미터 깊이의 절벽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면 물 밖으로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라앉게 될지도 모른다. 수심 2미터에서는 나올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깊이에서는 떠오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오히려 깊은 곳에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명상하듯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나는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남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속상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나도 모르게 부러워하고는 했다. 그런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나타나며 감정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었다. 바닷속에서 나는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물 위를 또는 밑을 보지도 말고 오직 지금 있는 높이를 직시해야 했다. 흐트러진 자세가 언제 나를 위험하게 만들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넓은 바닷속에서 나는 작은 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지구의 70%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작은 존재로서 나는 한없이 겸허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요즘도 가끔 화가 날 때면, 바닷속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최소의 움직임과 최소의 호흡으로 현재에 집중하던 그때. 그런 인내심으로 현실을 살 수 있다면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아무런 희망도 걱정도 없이 나의 생활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또 한 번 바다에서 배움을 찾으러 떠나보고 싶다. 그전에 오늘도 글을 쓰고 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여행에서 바다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