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와 체코

<알폰스 무하> 전시에서 본 것들

by LEAN

삼성역 근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관 기념으로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하고 있다. 전시 소식을 듣자마자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간이 나서 가게 되었다.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이 잊혀질까봐 오랜만에 브런치에 아주 간단하게라도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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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무하의 그림을 교과서에서 처음 보고 매혹되었던 기억이 난다. 스케치부터 완성품까지 참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아주 갸냘픈 소녀가 그렸을 것 같기도 하고, 일본 만화풍 같기도 한 그림들이었는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옷과 장신구를 한 여성들이 그려져 있었다.



담배 JOB 광고



이번에 미술관에서 작가 알폰스 무하에 대한 설명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파리의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유명 배우의 연극 포스터 제작을 계기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체코인으로서는 드물게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고 지속적으로 광고 포스터 등의 외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향수 광고 포스터

그의 작품은 담배, 자전거, 식표품 등 광고 그림들이 많다. 무하가 살던 당시는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대중으로 확장되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던 작가들은 세속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무하는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고나 생활품에 예술이 스며들도록 하였고 그의 인지도는 나날이 높아져갔다.











그 후 체코 출신의 이 화가는 아르누보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르누보라는 이 유명한 이름이 사용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이러한 양식을 ‘무하의 스타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림 속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기호화된 형태, 장식적인 디테일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Alphonse-Mucha-The-Precious-Stones-Ruby-Emerald-Amethyst-Topaz1900.jpg?type=w2 4가지 보석 : 루비, 에메랄드, 자수정, 토파즈. 1900
mk869lFZc20sZTZwRYpUTuLMZME.png '하루' 연작 시리즈: 아침의 눈뜸, 낮의 빛남, 저녁의 관조, 밤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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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의 그림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예술가들은 덩쿨같은 머리카락을 ‘무하의 마카로니’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화가의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무하는 쏟아지는 작품 의뢰를 받아들였고 작품의 수도 그만큼 쌓여갔다.


세월이 흐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는 고향인 체코로 돌아갔다. 그의 마지막 작품 중 조국의 사람들을 위한 연작 ‘슬라브 서사시’을 보면 무하의 이전 그림들에 비해 터치가 강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조국에서 치뤄진 그의 장례식에는 나치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0만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한다.

2a3ff5f665558094d0b93db5b294cffa.jpg 슬라브 서사시 (스케치)
28642468134_9f898e5351_n.jpg 슬라브 서사시

예전에는 무하의 그림이 섬세하고 정교하며 판타지적인 관능이 느껴진다고만 생각했기에, 화가가 타지에서 생활하는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알폰스 무하는 외딴 나라에서 슬라브 문화를 반영한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민족성과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유지할 정도로 의지가 굳건했고, 생애 마지막까지 고향인 체코를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타지에서 살아갈 때도, 나와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할 때도, 타인이 나의 작품을 비판할 때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무하를 움직이게 하던 원동력 중의 하나는 자신의 민족이 아니었을까.

감상을 마무리하며 문득, 오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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