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스토리 V
판도라(Pandora)는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판도라는 역사가 길지 않으나 매출액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정상급 주얼리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덴마크의 10평 남짓한 작은 주얼리 가게에서 시작한 브랜드는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1982년 젊은 금속 공예가 부부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주얼리 스토어를 열었다. 이 부부는 태국에 원석과 관련한 산업이 발달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들은 태국으로부터 주얼리를 수입해 덴마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골라온 주얼리들은 보헤미안 스타일의 독특한 디자인이었고, 금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 점차 비즈니스 규모가 커지자, 창립자 부부는 태국에 직접 공장을 세우고 디자이너도 영입하며 자신만의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판도라의 시그니처 ‘모멘츠 컬렉션(Moments collection)’이 탄생한 건 2000년이었다. 바로 팔찌의 참(Charm)을 끈에 끼워 자신만의 팔찌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지금은 커스텀화가 놀랍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디자인이었다. 모멘츠 컬렉션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고객을 끌어모았다. 참 하나의 가격은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였다. 물론 팔찌를 참으로 빼곡히 채우면 가격이 저렴하지 않지만, 한 두 개의 참으로도 멋진 팔찌를 만들 수 있었다. 덴마크의 꿈꾸는 듯한 낭만을 담은 다양한 참은 고객들에게 고르는 재미를 선사했다. 에펠탑 등 여행지에서 인상 깊었던 상징, 좋아하는 디저트, 귀여운 동물 등 신기한 참이 계속 소개되었다. 현재까지 팔린 모멘츠 팔찌의 개수는 천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개인적인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의미를 담은 주얼리로 판도라는 연예인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영화배우 캐서린 제타존스는 뮤지컬에 대한 사랑을 담은 팔찌를 만들었고, 테니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는 경기 우승을 축하하는 팔찌를 제작했다. 게다가 참은 해리포터나 디즈니 등과 콜라보해 새로운 고객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기에 적합한 디자인이었다. 고객들은 완제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미완의 제품에 자신의 스토리를 넣을 수 있다는 점에 환호했다.
그런데 판도라가 사업적으로 더욱 강력해진 데는 미학에만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한 점도 있었다. 판도라는 대량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판매에 적용하고 있다. 과거 패션 계의 과일 패턴 유행을 미리 예측하고 수박 참을 선보여 매출을 끌어올린 사례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는 내부 연구소에서 과거 판매 데이터와 런웨이, 스트릿 패션 등을 분석한다. 또한 현재는 AI분석으로 사이트에서 고객이 선호하는 참을 선택하면 어울리는 참이나 끈을 추천하기도 한다.
제품의 스토리를 꽉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움을 통해 신선함을 제공한 판도라. 참이 단기 유행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철저한 데이터와 기술력으로 빠른 시장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판도라는 친환경 흐름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등, 언제나 트렌드의 선두에 있는 브랜드로 각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