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다행히 육아와 병행할 파트타임 일을 구하게 되었다. 영어로 홍보 카피를 쓰는 일인데, 사실은 글쓰기보다는 SNS와 웹사이트 기획에 가깝다. 스타트업이라 직원들이 20대가 많은데 다들 미국 유학생이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혼자 30대인 데다 늦게 영어를 배운 터라 올드하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날 너무 긴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거쳤는데 지금도 떨리다니! 이 모든 게 시트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구한 것이 너무나 다행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한다. 막상 회사에 가보니 사람들이 친절하고 나름 귀엽기도 하다. 나와 열 살 차이의 직원도 있다.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물어보는 20대 초반의 팀원을 보고 나까지 긍정 기운을 받았다. 나도 어린 나이였으면 더 궁금한 것을 자유롭게 물어봤을까?
아주 보수적인 회사에서 일했을 때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됐었다. 그때는 잘하면 본전이었다. 하지만 이번 스타트업은 브랜드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기획을 새로 하는 단계였다. 이런 점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반대로 아주 잘 맞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기 위해 여러 팀원들과 사진과 자료를 보고 머리를 맞대보았다. 그래도 경쟁사와의 차별점을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
문득 ‘스타트업은 직원 대신 신도를 모아야 한다’라는 SNS에서 본 문구가 생각났다. 그만큼 창립 초기의 대표와 팀원들은 불확실한 가능성에도 도전하는 게 아닐까.
블라인드(Blind) 앱의 커뮤니티에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수많은 현실자각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막중한 스타트업 특성상 사명감과 책임, 희망이라는 말은 약간의 민망한 단어가 되기도 한다.
새 회사는 일하는 형태나, 분위기나, 사람들까지 기존에 있던 회사와 많이 달라서 놀랐다. 젊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스타트업 분위기를 실제로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 일단은 불확실한 회사의 미래보다는 확실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뒤로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험이 있을까?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어제보다 좀 더 발전하는 실력을 갖추기를, 그리고 버티면 언제든 기회도 또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