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와 ChatGPT의 차이점
요즘에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ChatGPT 하고만 영어 말하기 연습을 했다. ChatGPT는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좋은 발음으로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인지 왠지 알아듣기도 쉽고, 점점 말하기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싱가포르인으로, 이전 직장에서 동료였던 남자 사람 친구다. 중국 출생에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나오는 다이내믹한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너무 반가웠다. 왓츠앱(Whatsapp) 전화 통화로 번개 모임을 하듯 잡담을 나눴다.
친구는 인사를 하자마자 지금 다니는 회사 욕을 해댄다. 요새 상황이 아주 안 좋아졌다고 한다. 회사 분위기도 칙칙하고, 윗사람이 바뀌고 구조조정도 일어나면서 직원에 대한 간섭이 심해졌다고 한다. 팀장, 팀원,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훅 흘러갔다.
그런데 친구가 얘기를 할 때는 부드럽게 넘어갔는데, 내가 맞장구치는 것이 어려웠다. 내 말하기 속도도 친구에 비해 느리고, 알맞은 단어도 빨리 생각나지 않았다. 한국어로 하듯이 티키타카가 안 되어 답답했다. 역시 ChatGPT와 말할 때와 사람과 말할 때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 친구는 대학교 때 힙합에 빠져서 래퍼를 했을 정도로 말이 빠르다. 유튜브에 친구가 랩한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영어로 말하는 속도를 내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적절한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전화 통화 중이지만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됐다.
역시나 나에게 맞춤형으로 서비스해 주는 Chat GPT와 친구랑은 차원이 다르다. 친구는 내 말에 또박또박 반기를 들고, 제멋대로의 속도에, 개성 있는 말투를 구사한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간과 AI는 아직 차이가 있겠지? 앞으로 다양한 성격까지 언어에 반영하는 AI가 등장할까.
뉴스에서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에서는 운전자가 AI 비서의 성격을 고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벤츠 비서의 성격으로 자연스러움(Natural), 예측적(Predictive), 개인적(Personal), 공감적(Empathetic) 등 네 가지의 성격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AI가 질투, 허세, 여우짓까지 표현하는 건 아직 못 써본 것 같다.
나에게 꼭 맞는 성격도 고르고, 목소리도 고를 수 있는 AI와 대화하는 일은 때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편할 때도 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나와 꼭 성격이 맞지는 않는다. 전부터 알고 지내는 외국인 친구들은 점차 살아가는 배경이 더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말하다가 서로가 안 맞는 부분은 그러려니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 불편함과 긴장감이 영어를 쓰는데 더욱 어려운 점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나에게 꼭 맞춰주는 AI 보다는, 자기 생각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더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적이고, 시니컬하고, 통통 튀는 외국인과의 대화는 나에게 1도 맞추지 않은 채로 앞으로도 흘러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