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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별 Dec 28. 2024

빨간 대문을 넘어, 나만의 세상을 짓다

첫 손님과 함께 문을 연 나의 가게

가게를 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주변 환경, 고객 접근성, 교통량, 주차장, 건물의 노후도, 그리고 자금 상황까지. 그 모든 것이 뒤로 밀렸다. 파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2층짜리 건물과 빨간 대문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묘한 끌림을 느꼈다. 마치 나만의 이야기가 시작될 장소를 찾은 기분이었다.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계약을 결정했다.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강한 직감이 있었기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물론 다음에 공간을 얻는다면,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겠지만 그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이 길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높은 권리금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도 필요했다. 회사에서 짬짬이 제품을 판매하고 플리마켓과 원데이 클래스로 돈을 모았지만, 오픈 자금에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가게를 열자마자 바로 매출이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여유 자금까지 준비해야 했다. 서둘러 대출을 알아보았고, 다행히 꾸준히 회사를 다닌 덕에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29살, 아직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었다. 신용대출 계약서에 서명하는 손이 떨렸다. ‘이걸 갚아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이 선택이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거라는 믿음으로 서명을 했다. 사실 미혼이었다면, 실패해도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하며 조금 더 가볍게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혼한 상태였고,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선택하는 것은 남편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나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그 응원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길을 선택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계약 후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전 임대인은 권리금을 받고 모든 집기와 재료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가게의 상태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언제 썼는지 모를 낡은 주방 도구들, 구석마다 쌓인 먼지와 거미줄, 냉장고에 가득한 이름 모를 과일청까지. 이곳이 정말 장사를 하던 공간이 맞을까 싶을 정도였다. 상한 과일청을 냉장고에서 꺼내는 순간, ‘이걸 정말 손님에게 내놓으셨을까?’라는 의문이 절로 나왔다. 


가족과 남편, 친구들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먼지투성이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쓰레기를 나르고, 잡동사니를 버릴 때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3일 동안  1톤 트럭을 몇 번이나 가득 채워 버렸다. 잡동사니가 사라질수록, 공간이 마치 깊이 숨을 들이쉬며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곳이 곧 내 꿈이 자라날 공간이라는 사실이 점점 실감 났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해낼 수 없었기에, 그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때의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정리가 끝난 뒤, 공간을 하나씩 손보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 나갔다. 2층은 밝고 환한 색으로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바닥 공사를 통해 좀 더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테이블과 의자도 새로 들였고, 벽면 한쪽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1층은 낡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수업용 큰 책상을 배치했다. 주방 가구는 내 키에 맞게 리사이클로 재배치했다.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빨간 대문은 오래되어 고민이 많았지만, 한쪽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통유리로 교체했다. 새로 설치한 어닝 아래에서 햇빛이 가게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순간, 마치 공간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공간을 꾸몄다고 오픈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카페 운영 방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것은 시간이 걸렸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창업 컨설팅을 선택했다. 원두 선택, 디저트 준비, 커피 머신 사용법, 커피 맛 조정, 청소법, 메뉴 정하기, 가격 설정까지. 모든 선택이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밤낮으로 이어진 연습은 몸을 지치게 했지만,  ‘이 공간이 나의 꿈을 담은 곳으로 완성되리라’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벽 한 면을 완성할 때마다, 주방이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갈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낌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도와주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경험은 나에게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 믿음이 나를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했다.




마침내 30살, 6월 1일. 내 이름을 건 첫 가게가 문을 열었다. 첫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 숨을 죽였다. 음료를 만드는 내 손끝이 떨렸다. 손님이 커피를 받아들고 미소 지을 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 말과 함께, 이 공간이 정말로 열렸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긴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커피를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픈 이벤트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티를 1+1로 제공했는데, 그 덕분인지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가게가 북적이는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카페 공방을 오픈하고 출퇴근 길은 그전과 사뭇 달랐다. 그동안 무겁게만 느껴졌던 몸이 풍선처럼 가벼워졌고, 매일 생존을 위해 마셨던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할 여유가 생겼다. 오랜 꿈이 현실로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매장을 정리하고 퇴근길에 짧은 터널을 지날 때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길 끝에 보이는 하늘이 유독 아름다웠다. 어떤 날은 진한 주황빛이, 또 어떤 날은 분홍과 연보랏빛이 어우러져 저녁 하늘을 물들이곤 했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인데,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가게를 시작하면서 깨달은 건, 삶이란 단지 노력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직감이 새로운 길을 열었고, 작은 용기가 한 걸음을 내딛게 했다. 노력은 그 모든 과정의 버팀목이었을 뿐이다. 터널 끝 하늘처럼 매일 다른 빛깔로 채워질 내 가게. 그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세상은 어떤 색으로 나를 맞이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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