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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by butterflyer
혼자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

나는 혼잔데 난 아픈데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야 왜
다들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날 화나게 해 나도 모르게
너와 내가 다르듯 상처
그 크기와 깊이와 넓이는 다르지만
모두 가슴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 가잖아

양동근 '어깨' 중

https://youtu.be/TpPzIB6zu-c?si=iD5f5LHu7KfEUTP-



고립으로부터 독립


저는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피하고자 웬만하면 거리를 두었고, 대부분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몰두하는 활동이라곤 음악을 듣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 정도였습니다. 20대 초반까지 모았던 음악 CD는 1,000여 장에 육박했고, 하루에 서너 편의 영화를 감상했던 것이 왓챠피디아를 보니 지금까지 약 2,000여 편 되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매니아까진 아니더라도 꽤 즐긴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특히 힙합 장르는 디깅을 좀 했던 편이라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제 힙합 디깅의 시작점이었던 앨범 (*출처: wikipedia)


초등학교 시절, 영화의 의미를 알려준 영화 (*출처: imdb)



하지만 학교를 나와 사회를 맞닥뜨리게 되니 이게 좀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무얼 하든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형성될 수밖에 없던 겁니다. 뭔가 수 틀리면 끊어대기 일쑤였고, 고집만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방어 기제를 매 순간 작동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있었고 친구들은 있었습니다. 힘들어할 땐 술 한 잔을 사주기도 하고,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함께 기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 이걸 너무나도 당연히 여겼습니다. 영어 표현을 빌리자면, "I took it for granted." 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발자취는 사라진 것 같지만 모든 흔적이 남아있더군요. 어찌 됐건 지금 서 있는 곳은 그만큼 걸어왔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든 함께 있다는 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내 인생에 완벽한 제목 (*출처: imdb)



혼자 사업을 하게 되면 아이디어 안에 자신만을 가두기가 쉽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생각과 행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방구석에서만 자기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찾게 되고, 정작 찾아야 할 잠재 고객은 놓치기 십상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걱정돼서 더욱더 움츠러들고 자신의 껍데기를 켜켜이 쌓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사업이 본인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그리고 해줄 사람을 찾기도 전에 어떻게 자신을 포장할지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위험한 단계라 생각합니다.


*출처: The New Yorker


저는 매 순간 까이고 있습니다. 기관에서는 제가 전개하고자 하는 사업 내용이 부실해 보이거나 근거가 없다, 숫자가 없다며 비판합니다. 사람인지라 주눅 들 때도 있지만, 기세는 유지하려 합니다.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을 빗는 건 저만이 할 수 있고, 또 비판을 채워야 그릇이 커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합리화에 제동을 걸어줌으로써 생각의 전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제 자체가 제 자신에 자신이 없으면 상대도 관심 갖지 않습니다. 그 누가 무시하던 제 제품에 관심 가지는 단 한 명의 고객이라도 있으면 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과정을 만들고 있고, 다행히 아직 전체 볼륨은 작지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만좌모, 오키나와. (*출처: Tourist Japan)


태어나서 자신 있게 성공이라고 단언할 만한 사례는 인생에 없었기에 익숙합니다. 훗날 얼마나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기에 이렇게 침식을 견뎌낼까 하며 위안을 삼습니다.




움츠리기, 도움닫기, 스프린트


제작사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술에 대한 개발 필요를 느껴 협력 기관과 연결되고, 투자사를 만나고, 키 비주얼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여정에서 단 하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지만 누군가 도와줍니다. 그리고 도움이 있어야만 결과물의 질이 달라집니다. 혼자였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보면 전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만약 손을 내밀고 "살려줘"를 외치는 게 부끄럽다면 아직 절실하거나 간절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독고다이/히키코모리 성향이 짙었던 제가 사회성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 것은 수많은 인연의 난도질 후에 깨달은 "사람 사이의 연결"이었습니다. 어떤 한마디, 어느 1분여간의 유선통화, 이메일, DM 등 허투루 지나칠 게 없는 것이 창업자의 일상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필터링은 필요하지만요.)



다산, 어른의 하루 중



이제 스프린트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기대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다만 혼자가 아니기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으로 달릴 준비를 해내고 있습니다. 때론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내는 것이 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모든 분들, 언제나 믿는 길에 꽃이 피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출처: ghibli.fand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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