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내내 뭘 선물하면 좋을지, 아니 왜 내가 니들한테 선물을 하려고 하는지 고민했어. 서로 살아내기 바쁜데 무슨 책 선물이냐 싶었지만, 오히려 살아내기 바쁜 이때가 바로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책을 선물한다는게 참 미묘해서 내 속을 들춰보여주는 느낌이 많이 들어.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인간인지. 누가 읽는 책을 보면 섣부른 선입견 쯤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잖아. 아마도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을 위해 책을 고르고 읽는 것일 수도 있지. 받는 사람의 취향을 알더라도 섣불리 하기 힘든 선물이라고 생각해. 하여튼 많은 고민 끝에 가격도 싼데다가, 가치가 가격에 정비례하지도 않는 '책'을 선물하기로 했어. 먹는거, 입는거, 쓰는거 선물은 너희 별난 취향에 맞출 자신도 없고. 맘에 안들어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책장에 꽂아놔. 책장의 격을 떨어뜨릴 싸구려 책은 아니니까. 더구나 이 책은 익숙한 친구를 부르며 본문을 시작해!
어쩌면 내 마지막 겨울일수도 있었던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비록 가족들에게 비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면에선 가족들 이상으로 큰 힘이 되어줬던 너희들이야. 참 고맙다. 회복하고 길게는 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생각을 많은 방향으로 했어.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 말고 그 이상으로 내 삶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결국은 ‘행복’이더라. 아마도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고, 동시에 내가 운이 좋고 행복한 거라는 생각을 억지로라도 하기 위해서였겠지. 방금 전에 끝날 뻔 했던 삶이 계속되는건 결국 행복하기 위함이고,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내 삶의 질을, 어쩌면 양까지도, 결정하는게 아닌가 싶어. 어디서 들었어도 여러번 들었을 진부한 얘기지. 그런데 결국은 모두가 아는 이 말대로 행동하지 못해 불행해진다는게 또 아이러니라고 생각해.
이런 종류의 많은 책이 자신의 결과적 행복(또는 성공)을 권위로 내세워 단편적인 경험과 얕은 사색에 바탕한 싸구려 조언을 강요하곤 하는데, 이 책은 좀 달라. 역자가 후기에 적었듯이 휘발성 높은 교훈 말고, 치밀한 논리와 안목으로 그 본질에 집중해. 불행과 행복의 본질과 구조적 이유를 명쾌하고 적확한 언어로 설명해. 책 안의 챕터 하나하나, 문단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날이 선 창들처럼 주제를 겨누고 있어. 한문장 한문장 집중해서 읽다보면 어느 대목에서는 그 논리의 창들이 나를 에워싸고 윽박지르고 있다는 기분까지 들 때가 있어. 특히나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내가 목격된 것 같은 불쾌함이 느껴지기도 했어. 이렇게 생각해라, 저렇게 행동해라, 교조적으로 말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수긍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논리로 현상을 설명해서 자연스럽게 어떤 결론에 이르게 하는 그 힘은 철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걸까, 논리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걸까? 또, 지금 많이 얘기하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들, 나아가 그런 것들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찌나 본질을 꿰뚫는지 거의 백년 전에 쓰여졌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야. 물론 1930년대 영국을 살아낸 저자의 시공간적 한계는 어느 정도 감안해야할 부분도 있겠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읽지 말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보길 추천해. 내가 알던 판본은 절판이 되고 새번역으로 나왔더라. 훨씬 깔끔한 편집은 보기 좋은데, 목차가 너무 의역되어 있어서 불만이야. 원문 목차를 알면 읽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어.
Part I: Causes of Unhappiness
Chapter 1: What makes people unhappy?
Chapter 2: Byronic Unhappiness
Chapter 3: Competition
Chapter 4: Boredom and excitement
Chapter 5: Fatigue
Chapter 6: Envy
Chapter 7: The sense of sin
Chapter 8: Persecution mania
Chapter 9: Fear of public opinion
Part II: Causes of Happiness
Chapter 10: Is happiness still possible?
Chapter 11: Zest
Chapter 12: Affection
Chapter 13: The family
Chapter 14: Work
Chapter 15: Impersonal interests
Chapter 16: Effort and resignation
Chapter 17: The happy man
밤에 쓰는 연애편지처럼 이걸 보내고 이불킥을 하게 될까봐 보내지 않을 수도 있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라.
동윤 2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