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의 세계

2001년 봄 아니면 가을의 지적 자극

by 버덤

2000년대 초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xx의 이해", "oo의 이해" 등을 카테고리로 하는 교양수업 군이 있었다. 각각 카테고리에서 몇 학 점 이상을 듣는 것이 졸업요건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이전에도 수년간 유지해오던 커리큘럼이라 나름 유명하다고 알려진 강의도 많았고, 같은 이름의 강의임에도 교수님에 따라 인기도가 많이 갈리고는 했다. 인기 교수의 인기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수강신청 날 새벽부터 캠퍼스 근처 PC방에서 대기하는 게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물론 원하는 강의 날짜, 시간을 잘 골라서 "주사파"가 되기 위한 목적도 컸다.


그런 카테고리 중의 하나가 "역사의 이해"였다. 역사의 이해는 동서양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과목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중 단연 인기가 가장 높은 수업은 강 모 교수가 맡은 "근대 유럽의 세계"였다. 늘 그렇듯 우리는 "근유세"라고 줄여 불렀다. 대학교 4년 동안 들었던 수업 중에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낸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수업을 꼽겠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다. 내가 대학에서 들은 교양 강의가 이 수업의 반만큼이라도 인상적이었다면 나는 아주 달라져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우선 내가 그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과 방식을 너무 좋아했다. 정확한 커리큘럼은 생각나지 않지만 교수님이 옛날이야기하듯이 과거의 의미 있는 사건들과 그 의의, 앞으로의 사회와 역사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욱 말하시고 우리는 (적어도 나는) 토씨 하나 놓치기 싫어서 노트에 그 내용을 휘갈겨 써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날 밤, 늦어도 다음날에는 깨끗하게 정리해서, 화살표도 그어가며, 정제된 언어로 정리했다. 수업을 좋아했으니 물론 성적도 좋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핵심어(ID라고 일컬었다)도 꽤나 많다.


- 사회의 부조리를 나의 부조리로 느끼는 지식인intelligentia. 물론 지금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똘레랑스tolerance. 그리고 한 학생의 통찰력 있는 질문--똘레랑스의 한계는 무엇인가. 앵똘레랑스에도 똘레랑스를 보여야 하는가--에 꽤 많은 학생들이 손들고 참여한,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열띤 토론. 우리의 결론은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의 안티테제로서 생겨난 개념이므로 앵똘레랑스에게(만)는 똘레랑스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

- 파편화되고 극도로 전문화된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있기 힘든, 그래서 더욱 되고 싶은 르네상스맨Renaissance Man. 한 번 비틀어 생각하면 요즘 자주 생각하는 '본업존잘'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프랑스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시에예스 신부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Everything. 그들은 지금껏 무엇이었나? Nothing. 무엇이 되려 하는가? Something. 혁명의 배경이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핵심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도 좋았다. 러시아사를 전공하셨던 교수님은 20대의 내가 너무나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셨다. 깡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쓰신 모습이셨고, 몇 번 진지하게 개인적인 상담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위를 마치고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전임교수는 아니셨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가르치셨고, 학생들과 격 없이 지내시고 싶어 하셨다고 생각한다. 꽤 큰 대강당을 가득 채우는 인기 강의라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으셨겠지만. 적어도 관심을 보이고 의지를 보이는 학생들과는 따로 만남도 가지시고, 조언도 주시고는 했다. 책도 많이 추천해주셨다. 주로 역사와 사회를 큰 틀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당장 기억나는 몇 권을 꼽자면,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니콜라스 할라즈의 책과 자신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러시아사, 소련사의 대가인 존 개디스 박사 저서 몇 권, 유럽 해양세력 간의 헤게모니 변화를 큰 그림으로 설명해낸 대서양 문명사라는 책 등이 있다. 추천받은 책을 많이 읽고자 했고, 종종 읽은 책에서 비롯한 호기심이 다음 읽을 책을 고르게 한 경험도 있다.


나는 그 분을 통해 이전의 나였다면 도저히 못 들을 음악으로 치부하고 말았을 클래식 음악 듣기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교수님은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셨고, 그분이 추천한 것 중 좋지 않았던 건 없었으니깐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좋은 공연이 있으면 추천은 물론 할인티켓까지 구해다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KBS교향악단 이사회 멤버셨다. 유독 KBS공연을 많이 가게 된 이유가 이것이다.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자리, 또 어쩌다 있는 교수님과의 깜짝 만남 등이 항상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 분을 통해 이 무치치, 발레리 게르게예프, 글렌 굴드, 그리고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알게 되었다.


단언하건대, 이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깨어 있고 싶었고, '사회의 부조리를 나의 부조리로 느끼고 괴로워하는'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본업만큼이나 다양한 주제에도 박식한 '르네상스맨'이 되고 싶었다. 20대 젊은이의 지적 갈증(또는 허영)을 자극하고 또 충족해주었던 소중했던 경험이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라데츠키 행진곡이 줄줄이 끄집어낸 두서없는 추억이다. (죽기 전 언젠가는 빈 뮤지크페라인 앞 벤치에라도 앉아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신년음악회라도 듣는 호사를 누리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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