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 아나운서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
Regression to the mean 이라는 말이 있다. 통계학에서 쓰는 용어인데, 간략히 말하면, 샘플 수가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추세는 평균값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비슷한 뜻으로 Regressio to the old 라는 말을 생각해보았다. 살아온 날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옛것으로 회귀한다는 뜻 정도 되시겠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즐기다가도 어느샌가 구식의 것 예전 것에 돌아와 있는 내 자신을 종종 발견해왔으니 말이다.
라디오를 좋아했다.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적으려다 짧은 표현, 하지만 더 너른 뜻으로 읽힐 수 있게 적었다. 학창시절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야자시간 후 집에 가서 매일 들었고, 얼마후엔 뒤이어 다른 채널에서 하는 "정지영의 스윗뮤직박스"를 일주일에 네댓 번은 들은 것 같다. 여담이지만 사람의 목소리만에 반할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시절 자정 107.7메가헤르츠를 찾아가면 알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극기훈련을 갔더랬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서울대공원 근처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으로 기억한다. 텐트를 치고 잤고, 밥을 지어 먹었다. 거기서도 어김없이 밤에 라디오를 켰고, 이내 몇몇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었다. 그중에 한 명도 나처럼 라디오를 좋아했다. 그 아이는 소설책도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녀가 날 문학소년이라고 불렀던 것만 기억난다. 공부도 나름 했지만, 머릿속엔 축구만 있었던 내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일까. 문학을 즐기지 않는데 문학소년이 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썸"이라고 할 만한 묘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통나무 그루터기에 나란히 걸터앉은 모습과 그날 밤의 라디오 소리와 반짝이는 별들은 내 마음 속에 선명한 별이 빛나는 밤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 라디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운을 뗐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종종 듣던 라디오는 대학에 가서 전혀 듣지 않게 되었다. 연애를 했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 운 좋게 결혼도 했다. 연애하는 중에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연스레 음반을 모으고, 콘서트에 갔다. 그리고 KBS 클래식FM을 만났다. 진즉에 만났어도 별 인연이 시작되지는 않았을 거다. 학창시절의 내게 음악시간에나 "배우는" 클래식은 3점에서 5점짜리 내신 문제일 뿐이었으니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 같지 않으리라. 이런 문구를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한 권이었을 것이다. 내겐 클래식 음악이 딱 거기에 들어맞는 경우다. 뼛 속까지 음치인 내겐 음악은 최악의 스트레스 유발물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바이올린을 배워보겠다고 렛슨을 받았으니 말 다했다. 물론 몇 달 못 갔다.
막 시작된 클래식 사랑에 불을 지핀 것이 바로 클래식FM 라디오였다. 2000년대 중후반 당시에 제일 좋아하던 프로그램은 "명연주 명음반"이었다. 정만섭 선생이 진행하는 아주 무난한, 곡 제목 말고는 멘트가 거의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제일 좋아했던 코너는 집중감상곡 코너. 길게는 사오십 분에 달하는 대곡을 어디에서 전부 다 틀어준다는 말인가? 내 음반 레퍼토리를 넓히는, 아니 야금야금 돈을 쓰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느낌이 좋은 곡은 일단 적어두고, 음반 서적을 뒤진다. 특색 있는 연주, 좋은 연주를 찾고 레코드 가게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음반이 300장 가까이 되니.. 돈을 많이도 쏟아부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내게 있어서 클래식의 별밤이 명연주 명음반이라면, 클래식의 스윗뮤직박스는 단연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출발 FM과 함께"였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정세진 아나운서의 그 방송을 매일같이 들었고, 사연도 보내고 또 뽑히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감미롭고 아름다웠던 목소리였고, 아주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목소리였다. 미국에 유학 가서 인터넷으로, 전혀 라디오 같지 않은 방법으로 듣던 라디오에서 정세진 아나운서는 오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노래의 날개 위에". 너무 아름다운 제목이다. 오후 네 시의 따뜻한 햇빛 아래 주로 성악곡과 가곡을 틀어주는 "노날"은 선곡만으로는 내가 즐겨 들을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정세진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스킵했을 편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보다 아름다웠고 쌓인 눈을 녹이는 햇살만큼 따뜻했다. 라디오 창을 닫을 수 없었다.
오늘 우연히 아주 우연히 들은 노래의 날개 위에 끝부분. 거의 다섯 시가 다 되어서 틀어보니 마무리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이란다. 그동안 감사했단다. 갑자기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들을수록 확실해졌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정세진 아나운서의 마지막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불행인가, 행운인가. 나중에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며 아쉬운 멘트가 끝이 났다.
• 2008년 어느 날 라디오에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서 신청곡이 나갔다. 저작권 문제로 다시듣기 서비스가 불가능해진 지금은 이런 녹음이 쉽지 않으리라. 스테레오에 공테이프 넣고 녹음-재생 버튼을 함께 누르던 예전의 방법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언제나처럼 앞 부분이 먹히거나 잘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