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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Mar 28. 2024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포폴로 광장

'네로'황제의 무덤 위에 세운 로마 중심부로 통하는 북쪽 관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테지요. 로마의 전성기 때, 로마는 점령지에 도로를 만들 때, 실제로 모든 길을 따라가면 로마가 나오도록 도로를 설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포폴로 광장> 북쪽에 있는 '포폴로 게이트'는 예로부터 로마로 들어오는 북쪽 관문이었습니다. 문을 통과하면 넓은 타원형의 <포폴로 광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동선상 '포폴로 게이트'보다는 스페인 광장 쪽에서 포폴로 광장을 들어서게 되기 때문에 '포폴로 게이트'는 광장의 맞은편에서 만나게 것입니다.       

'포폴로 광장'에 있는 북쪽 게이트

<포폴로 광장>은 16세기 초, 세 개의 큰 대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광장을 조성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광장 가운데에 높게 솟은 '오벨리스크'와 물을 뿜고 있는 사자상이 있습니다. 광장 중앙으로 이동해 이 오벨리스크를 등지고 쌍둥이 성당을 마주 보게 되면, 로마 시내 중심가를 향해 곧게 뻗은 이 세 갈래의 길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시야에 길게 뻗은 세 갈래의 길을 보고 있으면 높은 곳이 아닌데도,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웅장함을 느끼게 됩니다. 

(좌)로마 시내로 관통하는 세 갈래의 길로 이어지는 '포폴로 광장' / (우) 광장 중앙에 위치한 '오벨리스크' 와 함께 세워진 사자상

 중앙에 배치된 '오벨리스크'는 높이 36m로  기원전 13세기의 것입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대제'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로마로 가져와 전차경기장인 '대원형 경기장'에 세운 것인데요, 16세기에 로마의 대규모 도시 재정비 계획을 세웠던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해 이곳 ‘포폴로 광장’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포폴로 게이트'를 바라보고 옆 오른쪽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입니다. 그 옆의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은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긴 ‘마르틴 루터’가 수도사로 있을 때, 2년간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포폴로 광장은 서기 68년, 자살로 3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네로’ 황제가 묻힌 곳입니다. '네로'황제는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통해 로마의 대표적인 폭군 중에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죠. 괴팍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자신의 의붓동생과 어머니를 죽이고,  '로마 대화제' 사건을 기독교도의 소행을 몰아 대학살을 벌여, 결국 스페인 총독의 반란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네로'가 과장되게 비정상적인 폭군으로 묘사된 것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실제 그가 황제가 되고 초기 5년 동안은 안정된 국정운영으로 업적도 많이 남겼다고 합니다. 

(좌) 북쪽게이트 옆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성당'의 입구 / (우) 네로황제의 두상

아무튼 '네로'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 네로 황제가 죽은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거대한 호두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로마시민들이 이곳에서 계속 귀신을 목격한다는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네로 황제가 죽은 지 천여 년이 지나도록 그 괴담은 더욱더 심해졌고, 1099년에 교황 ‘파스칼 2세’가 온갖 귀신과 악마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이 호두나무를 베어 내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포폴로 광장에 첫 성당을 지은 것이 바로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입니다. 이후로 '네로'의 귀신 이야기는 줄어들게 되고 이 이야기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폴로 성당'의 제단의 아치에는 이 이야기를 담은 교황이 호두나무를 베는 광경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좌) 교회 제단 아치에 '호두나무를 베는 교황'의 그림 / 라파엘로의 작품 '키지 예배당'

'포폴로 성당'의 수수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 성당에는 로마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걸작들을 여러 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가 설계한 <키지 예배당>과 베르니니의 조각상, 왼쪽 벽면에는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 책형>이 오른쪽 벽면에는 ‘카라바조’의 <성 바울의 개종>이 그것입니다.  '라파엘로'나 '베르니니'는 르네상스 당시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유명한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당시에는 그렇게 알려진 못했습니다. '카라바조'는 극적인 조명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준 화가입니다. 그가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재평가되면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유로화로 통일되기 전 이탈리아의 옛 화폐 '10만 리라'에는 '카라바조'의 초상과 그의 작품 <과일 바구니>가 그려져 있습니다.      

(좌)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 책형' / (중) 카라바조의 '성 바울의 개종 ' / 이탈리아 옛 화페의 '카라바조'의 초상화와 그림

'포폴로 성당'을 나와 다시 '오벨리스크'가 있는 중앙으로 나와 남쪽을 바라보면 세 개의 갈림길 사이에 두 개의 똑같은 모양의 성당이 보입니다. 그래서 '쌍둥이 교회'라 불리는데요,  오벨리스크 쪽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이고, 오른쪽이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 성당>입니다. 공중에서 부감으로 보게 되면 왼쪽 성당의 본당 천장은 둥근 원형, 오른쪽 성당은 타원형으로 차이가 나지만,  광장에서 눈으로 볼 때는 두 성당이 똑같아 보입니다. 

포폴로 광장 전경과 쌍둥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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