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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연 May 12. 2024

12. 새로운 달리기

워킹맘의 숨 쉴 시간, 달리기

며칠 전부터 왼손 약지, 새끼손가락과 그에 연결된 힘줄이 모두 아프다. 통증부위를 가만 보니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받치고 웹소설을 봤던 게 화근인 것 같다. 핸드폰을 쓰기 시작한 지 이십몇 년이 되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혹시 갱년기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스마트폰 사용으로 손가락 통증이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나는 안 그래도 부쩍 내 몸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원래 생리 직후에는 식욕이 없어 몸이 가볍고, 집중도 잘돼서 공부든 업무든 가뿐하게 해냈는데, 올해 들어서는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고 몸이 계속 무겁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갱년기(更年期)란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통상 완경 전후 5년, 즉 평균 45~55세까지를 의미한다.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면서 ‘출산-육아휴직-복직’이라는 대혼돈의 사이클을 두 번 치렀다. 복직 후 회사에서 자리 잡으려고 분투하면서 첫째를 중학교에 보낼 만큼 키우고 나니, 통계적으로 갱년기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면 아프다는 건데, 도대체 내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일본의 산부인과 의사 다카오 미호는 「갱년기 교과서」에서 “50세 이후는 여성 호르몬의 영향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일상의 축적이 직접적으로 건강에 반영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젊음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스스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쌓는 게 중요해졌다. 갱년기라고 해서 특별한 건강관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다.     


러닝 클래스에서 코치님이 하체 근력 운동을 시키며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몸무게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죠. 나이 들어서도 지하철 계단 오르고, 어디든 다니려면 다리에 힘이 있어야 돼요.”

너무 맞는 말이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켜도 군말 없이 열심히 해냈다. 달리기 좋은 다리를 만드는 걸 넘어서서 노년에도 내 몸 하나 정도는 스스로 간수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리를 단련하는 거다.      


동네 여성회관에서 코어 운동시간에 강사님이 허벅지로 버티는 동작을 시키시며 한마디 던지셨다. 동작을 유지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도 속으로 빵 터졌다.

“나이 들면 믿을 건 내 허벅지 밖에 없어요. 배우자 아니에요”       


전혀 다른 운동을 가르치는 두 선생님이 짠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는지, 이 재미있는 우연을 곱씹어 보았다. 사실 내 몸이 노년기로 전환된다는 건 미지의 영역이라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갱년기를 거치면서  운동 패턴에 변화가 생길까. 나이듦을 온몸으로 느끼고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시들어 가는 느낌일까. 그러다가 언젠가는 달리기 조차 못하게 되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가기도 했다.




사전적으로 갱년기의 ‘更(고칠 경, 다시 갱)’은 ‘바뀌다, 새로워지다’의 뜻을 지닌 말로, 신체의 흐름이 크게 바뀐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한다. ‘갱년기’란 말이 내 몸이 단순히 늙어버린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삶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함의가 있어 다행이다.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새로운 몸에는 새로운 달리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50대에는 50대의 달리기, 60대에는 60대의 달리기를 말이다. 예전과 비교하지 말고, 무리하지도 말고, 그저 내 몸에 맞춰 달리는 거다.   

 

나무학교
                                           문정희
....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나이듦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건 모두 잠잠히 삼키고 새 흐름에 몸을 맡기련다. 완경 이후 오히려 나의 달리기 생활이 더욱 풍성해질 수도 있다. 새 몸에 가만가만 순종하면서 슬기롭게 여물어 갈 수 있다고 시인이 말해 주었다.    

 

본격적인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내 몸에 좋은 습관을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면, 조금은 수월하게 갱년기를 보낼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도 활력 있게 살 수 있을 거다. 지금처럼 달리기와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내 몸과 마음에 불편한 곳은 없는지 더 꼼꼼히 살펴야겠다. 새 달리기가 인생 후반전 나날이 울창해지는 삶의 토대가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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