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계해변에서 만난 스물 둘, 스물 하나 게스트하우스지기들
몇 년 된 오래된 카메라로 인물 스냅사진을 담았습니다. 피사체로 사람을 찍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사진이라는 취미에 스며들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의 경우 코스튬 플레이 취미를 계기로 셔터 앞에 서게 되었어요. 수십 캐릭터를 좋아하던 취미에 대한 열정의 크기만큼 셔터의 수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사진모델이 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수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찍고 찍혔네요.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삼 년 전만 해도, 사진사가 사진을 보내주는 그 날이면 하루종일 사진 속 내 모습에 취해서 자기애에 빠지곤 했습니다. 지금도 인물사진이란 누군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향을 비롯하여 사람마다 자신 그대로의 모습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사진 속에는 이왕이면 조금 더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포토샵의 마법을 빌려서 턱도 깎고 눈도 키우고 콧볼도 줄이고, 사진에서 빛나는 모습을 위해서요.
저 역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사진을 열정적으로 편집하며 일관되게 예쁜 사진 속 내 모습을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몇 장이든 몇십 장이든 매일 사진을 보정하면서 꾸준히 사람들이 바라는 사진 속 모습을 연출하고 보여주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을 통해서 고유한 사람이나 서비스,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고 경제적, 사회적 성과를 만드는 세상이기에 이러한 노력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은 때로는 피로감이 느껴지는 일입니다. 최근에는 포토샵에 자동 얼굴 보정 기능이 나와서 몇십 장의 사진도 비슷한 형태로 아름다운 얼굴형 보정을 해준다고 하는데.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을 보정해 봐서 그런지 이제는 내 얼굴을 사진에 더 예쁘게 보이게 편집하는 데 염증이 느껴집니다. 어느새 사진촬영에 조금은 무의미함을 느끼며, 한여름처럼 열정적이던 취미에서 여러 걸음 멀어져 있었어요.
그러던 나날 중에 이런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제주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해변에 누워 뒹굴고 손이 얼어가면서 찍었습니다. 2백 장 조금 넘는 컷수를 찍었고 서울에 오자마자 며칠도 되지 않아 1백 장의 사진을 보정해서 모델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사막의 사구처럼 건조하던 마음을 달궜던 게 뭐였을까요.
그건 청춘들의 모래알같은 반짝거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사진을 찍은 곳은 제주도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지진 않은 사계해변이라는 곳입니다. 사계리사무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나오는 조용하고 반짝거리는 해변입니다. 사계리에는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혼자 묵으러 들렀던 이 숙소에서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의 게스트하우스지기들을 만났습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하듯 이 곳에서 숙박하며 게스트하우스 일을 하고 머무르고 있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스냅사진 찍어줄 수 있다"는 말을 지나가듯 던졌는데 방방 뛰며 좋아하던 강렬한 인상이 그대로 실천이 되었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하염없이 노을이 예쁘던 날이었습니다. Z세대인 모델들의 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핑노(핑크노을)"이었습니다. 만난 지 이틀째이지만 같은 숙소에 사흘간 머물며 대화를 나누던 사이라서 라포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런 표정이 나왔습니다. 이 작업만을 위해 만난 인연처럼 단단히 재밌게 뭉쳤어요. 아름답고 추억이 흐르는 사진들을 함께 담았습니다.
글, 사진 서은 (로컬인사 대표, 인스타그램 @model_pendy)